장모씨와 아내도 모르는 새 빠져나간 대출금 총 7억1300여만원의 내역. /SBS '궁금한 이야기 Y'

교사로 재직하며 근면 성실하게 살아온 장모(50대)씨는 정년을 몇 달 앞두고 급여명세서를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출 이자로 167만원이라는 큰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급하게 은행을 찾아간 장씨 부부는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30차례에 걸쳐 7억원 넘는 대출을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장씨는 지난달 29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대출 관련) 문자를 받은 적도 없고, 신분증을 분실한 적도 없는데 죽을 것 같다”며 “희망이 없다”고 했다. 은행 관계자는 장씨에게 “A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대출금이 모두 입금된 계좌의 이름이라고 했다. 바로 장씨의 딸이었다.

A씨는 교직 생활을 한 아버지의 뒤를 잊기 위해 서울에서 임용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평생 속을 썩인 적 없는 착한 딸이 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A씨는 제작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며 “처음에는 무시했는데, 갑자기 부모님 개인정보와 친구들 연락처를 보내면서 지속적으로 협박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돈을 송금했다는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와 공원에서 만나 피해 사실을 털어놨고, 이후 두려운 마음에 범인과의 대화를 모두 삭제했다고 했다. A씨는 “바보 같다. 머리가 하얘졌다”며 “근데 부모님 일이니까 그 전화가 다시 와도 또 똑같이 할 것 같다”고 했다.

◇삭제한 A씨 휴대전화 기록 복원해보니

A씨와 장씨 부부는 협박범들의 단서를 찾기 위해 휴대전화 데이터를 복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협박받은 대화 대신 드러난 건 A씨의 도박사이트 접속 기록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접속한 기록이 확인됐고, 장씨 이름으로 은행권 대출이 시작된 1월부터 도박 판돈은 1000만원으로 커졌다. 휴대전화를 맡긴 그날도 도박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신고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서부경찰서 측은 “피해자가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지 형사가 외부에 나가서 조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협박범의 전화를 받은 적 있다던 A씨도 결국 거짓말을 인정했다. 그는 “처음에는 1만원, 2만원으로 (도박을) 시작했다”며 “완전 늪이었다. 알면서도 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불법 도박은 급속히 번졌다. 2021년 기준 온라인 도박 중독으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상담을 받은 내담자는 1만7493명이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 8524명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도박 중독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근절하기 어려우므로 병(病)이라는 인식을 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당국은 도박 사이트 차단 등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