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산으로 헌혈이 줄면서 전국 곳곳에서 혈액 부족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감염 우려 때문에 헌혈을 기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수술을 미뤄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적정 보유량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18일 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헌혈의 집에 있는 오늘의 혈액 보유 현황판에 혈액형별로 보유량이 표시돼 있다. A형은 '경계'와 '주의' 단계 사이에 있고, O형은 '심각'과 '경계' 단계 사이에 있다. /뉴스1

18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혈액 보유량이 최소 5일분이 있어야 적정 수준으로 보는데, 지난 17일 오후 일시적으로 보유량이 2.5일분까지 떨어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 오미크론 확산세로 그나마 있던 헌혈자가 빠르게 줄고 있어, 긴급한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들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백신 접종자의 피를 수혈하면 안 된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번지면서 인터넷엔 “수혈을 원하는 사람에게 미접종자 피를 판다”는 매혈(賣血)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날 오후 찾아간 서울 은평구 헌혈의집 연신내센터는 헌혈자 침대 8개 중 7개가 빈 상태였다. 한 명만 헌혈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 이 센터에는 하루 평균 60여 명이 헌혈하러 왔지만, 지금은 20명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인근에 고등학교 4개가 있어 학생 헌혈이 많았는데, 코로나 이후 학생 방문자가 확 줄었다”고 했다.

적십자에 따르면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약 261만건이던 헌혈은 작년 약 243만건으로 줄었다. 18일 0시 기준 전국 혈액 보유량은 3.1일분에 불과하다. 김대성 적십자사 혈액수급팀장은 “최근 추이를 보면 올해는 헌혈이 연 200만건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에 머물 것 같다”면서 “오미크론 확산세가 심한 서울은 혈액 보유가 18일 0시 기준 2.6일분에 그쳐 특히 심각하다”고 했다.

당장 치료·수술을 해야 하는 의사, 환자들은 마음이 급하다. 직장인 이모(30)씨의 경우 아버지가 급성 빈혈로 현재 경기도 한 병원에 입원 중이라 혈액이 꾸준히 필요하다. 그는 최근 헌혈자와 수혈자를 연결해주는 ‘지정 헌혈’ 앱에 사연도 올렸다. 지정 헌혈은 헌혈자가 특정 환자에게 피를 제공해달라고 지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씨는 “헌혈자를 찾느라 하루하루 피 말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앱에는 이씨같이 혈액을 찾는 환자나 그 가족들의 사연이 매일 10여 건씩 올라오고 있다.

병원에서는 일부 환자나 보호자에게 헌혈해줄 사람을 미리미리 구해보라고 조언하는 사례도 늘었다. 경기도 한 대학병원 의사는 “혈액보유량이 언제 더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혈액 질환·백혈병을 앓거나 암 환자인 경우 헌혈하겠다는 사람을 미리 확보해두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헌혈이 줄면서 일각에서는 불법 혈액 거래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현행법상 혈액을 사고파는 건 불법이지만, 지정 헌혈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 최근엔 특히 ‘백신 접종자들의 피로 병이 생길 수 있다’는 식의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미접종자 혈액’을 팔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 이달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미접종자의 혈액을 급히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는데, “피를 팔겠다”며 자기 연락처와 혈액형, 백신 접종 여부 등을 적은 댓글이 여럿 달렸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본지와 가진 통화에서 스스로를 ‘미접종자 혈액 브로커’라고 소개하면서 “불법인 줄 알지만 일단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400만~500만원을 내면 경기도에 사는 32세 여성 혈액을 (지정 헌혈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과 헌혈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헌혈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엄태현 일산백병원 교수는 “헌혈을 통해 코로나 감염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접종자의 피가 혈액암 등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도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적십자 관계자는 “현재 혈액 보유량이 3일분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등 위기 상황이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헌혈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만큼, 잘못된 소문과 혈액 부족으로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요청 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