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6일 구속된 40대 강동구청 7급 공무원 김모씨가 공금 계좌의 이체 한도를 늘리기 위해 은행에 구청 명의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문서 위조 등 혐의를 추가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횡령 직전인 2019년 말 은행에 구청 명의로 된 공문을 보내 부서 업무용 계좌의 하루 이체 한도를 1억원에서 5억원으로 늘려달라고 했다. 김씨는 이 계좌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폐기물처리시설 건립기금을 받아 이중 일부를 개인 계좌로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입출금이 되지 않는 기금 관리용 계좌가 아닌 이체가 가능한 구청 공금 계좌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선 구청과 서울시청 직원들 사이에선 이런 수법이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김씨가 이용한 계좌는 이른바 ‘제로페이 계좌’로 알려졌다. ‘제로페이 계좌’는 시청이나 구청 공무원들이 비품 구매 등 공금을 사용할 때 이용하는 ‘제로페이’와 연결된 계좌를 말한다. 구청 직원이 가게에서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면 구청 금고 계좌에서 ‘제로페이 계좌’로 돈이 입금되고, 이 돈이 다시 가맹점으로 전해지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제로페이 계좌’는 일반적으로 이체한도를 ‘0원’으로 한다는 것이 서울시와 일선 구청 등 다른 지자체의 설명이다. 직원이 제로페이를 사용한 가게(가맹점)로 바로 현금이 송금되는 시스템이어서 별도의 이체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김씨 같은 횡령 사례를 막기 위해 시의 제로페이 계좌는 이체 한도를 ‘0원’으로 설정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로페이 계좌는 이체한도만이 아니라 잔액도 ‘0원’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평시에는 잔액을 ‘0원’으로 유지하고 있다가 물건 구매 등 제로페이를 사용했을 때만 돈이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서울 시내 한 구청 직원은 “제로페이를 사용한 후 영수증을 재무과에 내면 돈이 입금되는데 제로페이는 일반 신용카드(법인카드)보다 영수증을 내야 하는 기한이 짧아 사용내역이 생기면 3일 내로 바로 기안(起案)을 내야 한다”며 “계좌 입출금 내역도 전부 기록이 남고 수시로 기안이 오가는데 김씨가 2년 동안 숨길 수 있었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제로페이 계좌’는 박원순 전임 서울시장 시절인 2019년 무렵 제로페이 사용률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사용을 적극 독려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기존에 법인 신용카드로 처리하던 공금을 제로페이로 결제하라는 지침에 따랐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제로페이와 연결된 계좌가 기관마다 하나씩, 많게는 부서마다 하나씩 있다는 것이 시청과 구청 설명이다. 서울시의 경우 시청 직원 전체가 한 개의 제로페이 계좌만 쓰고 있으며 재무과에서 일괄 관리한다. 그러나 일선 구청은 부서마다 ‘제로페이 계좌’를 둔 곳도 있다.
3년 전 구청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제로페이 도입 당시 중앙 부처에서 쓰라고 독촉은 하는데 신용카드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이다보니 일선에서는 혼란이 있었다”며 “김씨도 그런 허점을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범죄에 이용된 계좌가 제로페이에 연결된 계좌였던 것뿐이지 제로페이 시스템 자체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