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게임은 증세(增稅)입니다. 버티지 못하는 다주택자는 탈락입니다. 두 번째 게임은 집값 올리기입니다. 버티지 못하는 무주택자는 탈락입니다. 세 번째 게임은 사회적 거리 두기입니다. 버티지 못하는 자영업자는 탈락입니다. 네 번째 게임은 물가 인상입니다. 버티지 못하는 서민은 탈락입니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대, 성별, 직업을 불문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온라인상에 등장한 패러디물이다. 이 드라마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무인도에 갇혀 상금 456억원을 차지하기 위한 생존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취업, 부동산, 주식·코인 등 ‘치열한 경쟁 속, 탈락자들이 대거 양산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스크린에 구현해 공감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학생도, 직장인·자영업자도 드라마에 각자 본인의 상황을 대입해가며 “난 이미 30년째 오징어 게임 중” “게임에 탈락해 낙오자가 된 기분”이라는 등의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20대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은 “(드라마 속 게임이)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은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참가자 456명은 모두 동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평등하게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마다 편법을 쓰는 인간 군상들이 나타난다. 몰래 숨겨온 라이터로 바늘을 불에 달궈 ‘설탕 뽑기 게임’을 쉽게 통과하는가 하면, 의사인 참가자는 게임 진행자들의 장기 적출 범죄를 도우며 다음 게임 정보를 미리 빼내는 꼼수를 부린다. 대학생 염소정(23)씨는 “공정한 게임 같지만 편법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보다 앞선 출발점에 서지 않느냐”며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 국회의원 자녀들의 취업 비리 등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드라마에서도 느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곽상도 의원 아들의 고액 퇴직금을 풍자한 ‘오십억 게임’ 포스터도 올라와 있다.
30대 직장인들의 반응이 가장 뜨겁다. 드라마에서 고단한 삶과 빚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한 방에 인생 역전을 꿈꾸며 게임에 빠져드는 게 ‘꼭 내 모습 같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에 드라마 전편(9회)을 모두 시청했다는 직장인 김장현(31)씨는 “최근 몇 년간 막차가 아니길 바라면서 부동산, 코인, 주식에 뛰어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며 “비슷한 인생의 서민들끼리 서로 돈 더 벌겠다고 싸우는 모습이 한국 사회의 단면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살벌한 극한 경쟁임을 알고도 게임에 스스로 뛰어든 참가자가 많다는 점도 현실을 반영한다. 드라마 속 게임 설계자는 “나는 게임 참여를 요구하지 않았다”며 “(여러분 모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들 아니냐”고 말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설계한 게임에서 무고한 자영업자들만 탈락자 신세가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드라마 주인공인 이정재는 일하던 회사에서 구조 조정당한 뒤 치킨집, 분식집을 열었다 망해 빚만 4억원 넘게 진 자영업자 출신으로 등장한다. 서울 강동구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김선홍(42)씨는 “코로나 영업 제한으로 문을 아예 못 연 기간만 1년 이상”이라며 “정부가 만든 ‘방역 수칙 게임’에 참가했는데 누구는 영업 제한에 못 버텨 죽고, 누구는 적자 나서 죽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모(42)씨도 “작년 한 해 동안 2억원 넘게 대출받아 빚에 허덕이는 나 같은 사람들을 드라마에서 봤다”며 “지금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의 모습과 똑같다”고 했다.
김공숙 안동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드라마가 타인을 짓밟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상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잘 그려내면서 다양한 계층의 고른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