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윤서인(왼쪽)씨와 정철승 변호사. /페이스북

‘웹툰 작가가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걸 보면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그 웹툰 작가를 상대로 위자료 50만 원씩을 받아내자고 한 변호사가 제안했다. 소송 참가비는 5만 원. 그런데도 1200명이 몰렸다. 법조계에서 “승소는커녕 소송 성립 가능성조차 의문”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해당 변호사는 ‘남는 소송 참가비를 어디에 쓸 거냐’는 물음에 “내가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

◇홍범도·文대통령 모욕 작가 상대 국민 위자료 청구 소송

지난 광복절, 청와대는 봉오동 전투 승리 주역인 홍범도 장군 유해를 국내로 들여와 국립현충원에 안장한 것을 시작으로 고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등 각종 행사를 벌였고, 크게 홍보했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페이스북에 “홍범도는 그냥 공산주의 투사 아니냐? 평생 공산주의밖에 모르던 소련 공산당원을 대전 현충원에다 묻는 문씨 미쳤네”라고 적어올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홍범도 일기’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은 소련 최고지도자 레닌을 접견하고 권총 1자루와 금화 100루블, 레닌이 친필 서명한 ‘조선군 대장’ 증명서 등을 선물 받은 사실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을 대리해 각종 소송을 벌여온 정철승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이제 공익소송을 변호사의 수익모델 중 하나로 만들어 봐야겠다’. 윤 작가를 상대로 국민 1인당 위자료 5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걸고 고소권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 형사고소까지 하는 소송 대리인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 변호사는 윤 작가의 글에 대해 “아마도 홍범도 장군이 1927년 볼세비키당에 입당한 사실을 두고 위와 같은 망언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당시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제국주의와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윤서인 같은 자들은 역사적·사회적 정의를 전도 시키고 공분을 자아내는 언동을 자행해 유명세를 탔다. 이런 행위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악의 인센티브’를 끊고 그런 언동에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과 형사처벌의 리스크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각인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익소송에 참여할 분은 금 5만 원을 송금하라”며 계좌번호와 전자우편 주소를 남겼다.

◇5만원씩 걷은 수임료… “내가 꿀꺽” 댓글 남겨

보통의 공익 소송은 수임료를 소액만 받거나 아예 수임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23일 한 시민이 정 변호사 페이스북에 물었다.

“모금액 수억 원 중 변호사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가나요?”

정 변호사는 “모금액이 아니라 변호사 수임료입니다. 수억 원 모두 내가 꿀꺽 먹습니다”라는 답글을 달았다.

정철승 변호사가 한 시민의 질문에 답한 내용. /정철승 변호사 페이스북

조선닷컴이 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모인 돈이 6000만 원정도다. 수억 원 운운하는 사람이 있어서 장난삼아 이런 글을 남겼던 것일 뿐”이라며 “5만 원은 가장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최저한의 형식적인 금액을 이야기한 것이지 수익성을 생각하고 내민 금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승소가 확실한 집단소송은 변호사가 수임료를 받지 않고 소송인단을 모집해 성공보수로 수임료를 받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번 건은 그런 경우라고 보기 힘들다”며 “공익소송을 새로운 수익 모델로 만들어 볼까 해서 진행하는 일종의 테스트다.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약 5000만 원이면 변호사가 몇 달 열심히 해볼 만하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 “형사사건은 당사자가 고소해야하는데, 文이 하겠나”

법조계에서는 소송에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검사 출신 임무영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사자명예훼손과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는 이론을 구성하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욕죄는 당사자가 고소해야 성립하는 친고죄인데, 고소권자인 문 대통령이 윤 작가를 고소할 가능성은 0%로 수렴한다고 본다. 하더라도 정 변호사를 선임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어 “결국 정 변호사가 추진하겠다는 형사 고소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며 “게다가 민사 사건과 달리 형사 사건에는 비용이 거의 안 든다. 얼마 안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몇천만 원씩 걷을 이유가 없다. 정 변호사는 남은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히 이야기 안 했는데 열거된 항목 중에는 인지대, 송달료 외에는 변호사 비용만 있으니 아마도 남은 돈은 정 변호사의 매출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 변호사는 박원순 전 시장의 아내 강난희씨를 대리해, 박 전 시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