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6세 청년이 쓴 책이 화제다. 초판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MZ세대 제대로 이해하기’가 화두가 된 세상에서 그는 MZ세대로서 MZ세대는 누구인지 책에서 답한다. 또 그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 특히 386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K-를 생각한다>의 저자인 임명묵씨가 주인공이다. 그의 시각에 비친 기성세대, 특히 386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90년대생이 가장 공감하는 단어는 ‘헬조선’, ‘금수저’다. 90년대 생들은 상하층의 격차가 커졌다고 느낀다. ‘인서울’(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상류ㆍ중산층 문화와 그에 해당하지 않는 문화가 철저히 나누어진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계급이 나뉘었다는 거다.”
- 부모의 계급이 바로 자녀의 계급이란 소리인가.
“우리나라 건국 신화는 평범한 사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학(無學)의 농사꾼이어도 본인이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들을 흉내 내며 살 수 없다. 90년대 생들은 그들의 부모인 60년대 생들 사이에서 계층 분화가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까지 계층화, 세습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체험한 거다. 내가 386세대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 MZ세대의 눈에 비친 386은 어떤 모습인가.
“1950년대에 태어난 70년대 학번들은 힘은 약했지만,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나, 전태일 분신으로 촉발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 중심의 안보, 무역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정권이 독점하던 세계관에 균열을 냈다. 미국은 한국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자신의 제국적 이익만을 고려한 국가로, 재벌은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에 편승해 일본과 협력하고 우리나라의 노동자, 농민의 삶을 파괴한 매판 자본이 됐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 어떻게 말인가.
“온건한 비판 세력이 될 수 있던 이들도 모두 강경한 반대 세력으로 전환됐다. 자율성을 보장받은 공간 속에서 수많은 학생이 매년 운동권에 유입돼 사상적으로 감화되고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을 불태웠다. 결국 광주는 반대파를 급진화시키고, 신군부 정권의 항구적 족쇄로 남아 1980년대를 학생 운동의 전성기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 거다. 중요한 반전은 신군부 정권을 통해 한국을 통제하려던 미국이 광주 학살을 위해 군부대 이동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미주의가 박현채나 리영희를 비롯한 몇몇 지식인들의 추상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 반미(反美)의 뿌리를 추적했나.
“8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급진적인 혁명론을 완성했고, 금서(禁書)였던 마르크스와 레닌, 중국 공산당의 저작들이 유입됐다. 소위 ‘사구체 논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들이 ‘NL’로 알려진 민족해방파, 혹은 주사파였다. NL은 특유의 반지성주의적 조직방법론과 한국인에게 여전히 지배적인 민족주의 감성을 활용해 주도권을 쥔 거다. 고로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혁명에 착수해야하고, 그 세력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거다. NL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은 사회주의보다는 신(新)전통주의라고 봐야 한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그들은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볼셰비키의 후예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군부 독재 시기에 진행된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한국에 복원코자 했던 이들이다. 계보로 찾자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로 보는 것이 맞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거부하고 풍물패를 조직한 것, 정치ㆍ사회적 목표가 좌절되고 많은 이들이 종교나 무속 등 정신 수양 운동에 귀의한 것,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물들지 않은 공동체의 이상향으로 북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것이 같은 연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친척은 이슬람주의자들이다.”
- 386과 이슬람주의자들이 같다는 건가.
“386의 활동은 대학 인근의 쪽방에 모여 코란을 암송하면서 이슬람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법을 어겨가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려고 하고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결의했던 터키나 이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학생들의 활동과 유사하다. NL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영환의 사상에 1979년 미 대사관을 점거한 테헤란의 군중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틀렸다. 완전히.”
- 386은 왜 틀렸나.
“전후(戰後) 한국이 이룬 근대화가 여태 비서구 국가들의 근대화와 본질적으로 달랐다. 20세기 후반 급진적인 신전통주의와 사회주의가 세력을 얻어 갈등이 극대화된 지역은 이중경제체제 하의 문화적 분리가 심했다. 가령 석유산업을 통해 얻는 이득이 서구화된 엘리트에게만 가고, 농민과 도시 빈민은 독실한 신앙을 유지한 채 계속 저발전 상태에 있던 이란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출지향적 산업도시들이 먼저 발전하는 불균등발전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국가들처럼 이중경제체제가 등장하지 않았다. 농촌 역시 근대화의 많은 수혜를 입었고, 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되어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의식화된 대학생들의 혁명론을 따라갈 사람은 없었다. 세상은 백기완이 아니라, 새로운 중산층의 권리를 보장해줄 김영삼과 김대중이 필요했다.”
- 386이 세력 확장에는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86세대가 갖는 지배력은 소련 후기에 형성된 공산당 노멘클라투라에 비견할 수 있다. 공산당이 발탁한 농민과 노동자 출신의 청년 엘리트층은 스탈린의 경제 개발과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앞세대의 빈자리를 메꾸고 지도자급 인사로 훈련됐다. 이들은 넘볼 수 없는 지배력을 확보해 고령이 되어서까지 국가의 중요 직위를 놓지 않은 채 권력을 만끽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자본, 문화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과 촉망받는 커리어를 물려주려 했고, 자녀들은 그런 특혜를 거부하지 않았다. 조국 사태와 같다. 대한민국의 386는 혁명의 꿈을 잊고, 자신들의 자산 상승을 즐기며 자녀들에게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교육, 해외 유학 등을 제공하는 엘리트층이 됐다.”
-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혁명을 하는데 현실에서는 자본주의를 누린다.
“중산층이자 사회의 주역인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지 않았지만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달라졌고 이명박 때 민주당은 신속하게 좌파 논리를 수용해 이명박 정권을 공격했다. 2017년에 86세대가 완벽하게 장악한 민주당은 좌파적 경제, 사회 의제와 민족주의적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면서 문재인 정부의 이름으로 집권했다. 문제는 이들이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다.”
- MZ세대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86세대가 누리는 것들이 대부분 그들이 쟁취한 것은 맞다. 대학가에서 뭉쳐 화염병 들고 백골단과 싸웠고, 대학 시절의 경험을 자산으로 기업체나 정당의 윗사람을 들이받으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했으니까. 그들은 주류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주류는 따로 있다고 여긴다. 지배 엘리트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집권 세력인 386이 저잣거리에서 술 한잔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재벌, 검찰, 보수언론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는다면, 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을까?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전대협 주체사상을 신봉하지 않았느냐. 전향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이인영은 ‘전향을 강요하는 것은 남측 민주주의에 대한 태영호의 인식이 박약하다는 것’이라고 넘어갔다. 늘 그렇듯 어물쩍 넘어간 거다. 어찌 보면 그들은 과거의 과오를 인정한 적절 시간을 놓쳤다.”
- 왜 그랬을까.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도자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