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장사를 접은 건 26년 만에 처음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에서 부대찌개 장사를 하는 박모(54)씨는 ‘거리두기 4단계’ 적용을 하루 앞둔 11일 영업시간을 ‘오후 3시까지’로 단축했다. 1995년 개업해 ‘오전 10시~오후 10시’ 원칙을 20년 넘게 지켜왔지만 결국 물러선 것이다. 그에겐 저녁은 늘 ‘황금 시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손님이 70%나 줄었다. 한 때 8명이었던 직원은 이제 1명으로 줄었다. 지난 3월부터 직원 1명과 단둘이 가게를 지킨다. 코로나 확진자가 치솟기 시작한 이달초부터는 오후 4시 넘어 오는 손님이 하루 2팀 남짓이다. 박씨는 “공과금도 벌지 못 하는 저녁장사를 할 이유가 없다”며 “나도 직원도 모두 오후 3시면 집에 간다”고 했다.
◇저녁 일자리가 사라진다
저녁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황금 시간’이었던 저녁이 잇단 영업 제한으로 ‘통금 시간’이 된 탓이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된 지난 12일부턴 오후 6시 이후 ‘2인 이하 모임’만 가능하다. 사실상 퇴근 후엔 빨리 귀가하라는 ‘통금’인 셈이다. 식당·술집 등 저녁 장사로 먹고 살았던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참다 못 한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도 안 나오는 저녁 영업을 속속 중단하면서 일자리도 덩달아 자리를 감춘 것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에 따르면, 전체 공고 가운데 ‘저녁 구인 공고’ 비중은 2019년 상반기(1~6월) 10.1%에서 작년 상반기엔 9%로 줄었다. ‘저녁~새벽’ 시간대 공고 역시 15.2%(2019년)에서 14.4%(2020년)로 감소했다. 알바몬 관계자는 “지난해 전체 구인 공고 수도 전년보다 줄었다”고 했다. 직원 없이 혼자 가게를 꾸리는 자영업자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코로나에, 최저임금까지 인상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된 것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손님은 없는데 인건비가 자꾸 오르다보니 ‘무인(無人) 점포’를 고민하는 자영업자도 늘고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하는 유성연(56)씨는 최저임금 인상 소식을 들은 이후 무인 시스템 구축을 알아보고 있다. 현재 그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두고있다. 그는 “본사 지원을 받으면 무인화하는데 200만원 정도 들더라”며 “내년도 한 사람, 한 달치 월급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다”고 했다. 그는 가게를 무인화하고, 밤 12시 이후에는 사람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유씨 같은 생각을 하는 점주들은 점차 늘고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심야 시간대(오전 1~6시) 문을 닫거나 무인 영업하는 점포 비중은 2016년 13%에서 지난해 20%로 늘었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 홍성길 정책국장은 “매년 인건비가 오르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모(43)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보고 무인 전환을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했다. 2019년 5월 개업한 그는 많을 때는 7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뒀지만, 코로나로 인한 각종 영업제한 조치를 겪으면서 지금은 2명으로 줄였다. 이들이 낮에 근무하고, 저녁 마감은 김씨가 한다. 그는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인건비가 부담스럽다”며 “출입뿐만 아니라 셀프 음식 조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식으로 무인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치열해진 저녁 알바 경쟁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녁 알바’를 구하려는 경쟁은 점차 심해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류모(34)씨는 올해초 구인·구직 사이트 두 곳에 ‘야간 알바’ 공고를 냈다가 휴대폰으로 40여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지원자들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인데 일자리가 없다’ ‘뽑아만주면 정말 오래 다니겠다’며 절절한 사연을 보내왔다고 한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최윤선(20)씨는 최근 편의점 3곳과 학원 1곳의 알바 자리에 지원했다가 모두 ‘탈락’ 통보를 받았다. 최씨는 “대학교 방학 기간인데다, 코로나 단계까지 높아져 저녁 알바 구하는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녁 일자리의 실종은 구직자들의 소비 활동을 위축시키고, 결국 배달 기사처럼 코로나 시대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일자리로의 쏠림 현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