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친 어머니들은 "아이들 덕분에 사진도 찍고 호강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왼쪽부터 정난모·이은자·김남연·조부용·장민희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아휴, 죄송해요. 정신없으시죠? 이렇게 시끄러운 아줌마들을 만날 일이 없으실 텐데.” “말하다가 산으로 가도 이해해주세요. 우리가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설립을 이끈 ‘어벤져스’ 어머니들이 등장하자 주변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2017년 9월, 서진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 토론회에서 이들은 반대하는 주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다. 온갖 비난과 야유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고개를 숙인 엄마들 영상이 여론을 움직였다. 2013년부터 설립을 추진해온 서진학교는 7년 만인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엄마들의 기나긴 싸움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지난달 개봉해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7일 다큐멘터리 주인공인 김남연(54) 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 장민희(49)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 정난모(50)·조부용(61) 전 강서장애인부모회장, 이은자(50)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장을 만났다.

◇후배 엄마들 위해 굳은살 박인 우리가 버텨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장민희(이하 장): 저는 딸만 셋인데요. 다른 딸들은 대학생이고 코로나 시기라 아르바이트도 못 하고 있는데, 장애인 딸인 혜련이는 취업해서 식구들한테 치킨도 쐈어요. ‘혜련이가 번 돈으로 가족이 치킨도 먹는다’ 추켜세워주면 아주 좋아해요. 발달장애인들도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야 자존감이 높아지거든요.

정난모(이하 정): 저희 아이는 올해 2월에 졸업했는데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니까 막막하더라고요. 비장애인도 취업이 힘든데 현실적으로 갈 데가 정말 없더라고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직업교육 받는 기관을 찾아봤죠. 합격선이 60점인데 아들 재준이가 62점으로 붙었어요. 너무 감사했죠.

2020년 서진학교가 개교했을 때, 다섯 엄마의 자녀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었다. 처음부터 내 자식을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들처럼 성인 자녀를 둔 엄마들을 ‘큰 엄마’,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을 ‘작은 엄마’라 불렀다.

김남연(이하 김): ‘작은 엄마’들이 그 전쟁터에 나가서 욕설을 들으면 그다음 날 누가 죽을지 몰라요. 아이가 어릴 땐 장애를 인정하기도 벅차거든요. 우리는 그동안 단련돼서 인이 박이고 굳은살이 박였지만 작은 엄마들은 전쟁 통에 내보내면 안 되죠.

장: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내 자식, 네 자식을 구분하지 않는 연대가 있어요. 저도 항상 언니들이 있으니까 뒷배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거든요. 싸워도 5대1일 테니까.

-무릎을 꿇었던 2017년 주민 토론회 상황이 영화에선 더 자세하게 나오더라고요. 당시에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김: 우리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나, 가는 데마다 이런 대우를 받고 사나,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었어요.

정: 저는 당시에 위쪽에서 엄마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거든요. 혼자 있으면 무서웠겠지만 그렇게 함께 싸우는 엄마들을 보니 든든하기도 했어요.

김: 그날은 그래도 밝은 곳이었잖아요. 예전에 동대문 발달장애인 훈련 센터 설립하려 할 땐 늦은 밤까지 설명회를 했거든요. 주민들이 밤에 횃불을 들고 나왔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더 난폭한 말을 쏟아내는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죠.

-기사를 본 가족들도 속상했을 것 같아요.

장: 아빠들이 아이를 봐줘서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었거든요. 못 봐서 그렇지 만약 아빠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싸움 났을 거예요.

이은자(이하 이): 저희 엄마는 장애부모회 활동에 불만이 많으셨거든요. 네 자식이나 잘 키우지, 왜 그렇게 네 시간과 돈을 쓰고 다니냐고. 기사가 계속 나오니까 안 하던 카톡을 하셨더라고요. ‘은자야, 너무 애쓰지 마라. 엄마가 너무 속상하다.’ 그때 내가 불효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는 내 새끼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우리 엄마는 본인 딸이 안쓰러운 거죠.

정: 고등학생인 저희 조카는 영화 보고 펑펑 울었대요. 엄마들이 저렇게 투쟁해서 만든 게 ‘학교’라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 만드는 게 저렇게 어려웠다니....

조부용(이하 조): 가족이 제가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알았다더라고요. 몰라서 미안했다고, 앞으로 도울 일 있으면 말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난해 3월 문을 연 강서구 서진학교. /영화사 진진

◇장애아 엄마들 절대 일 놓지 마시길

장: 저희 어머니는 영화관을 잘 안 가시는데 최근에 ‘미나리’랑 ‘학교 가는 길’을 보셨대요. 이 영화가 미나리보다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조: 윤여정보다 장민희다. 하하! 저희 아이는 이제 ‘곰 세 마리 좋아하는 현정이’ 소리 들어요. 보신 분들이 아이들 특성 하나하나를 새롭게 깨닫고 이해해주시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이: 우리 딸은 그 전까진 그냥 ‘장애인 지현’이었는데, 지금은 ‘감자전 잘 만드는 지현이’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정: ‘발달장애인 김재준’ 하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뭘 잘하는지는 관심 없고 장애만 보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도 똑같거든요. 잘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죠.

-영화 속에서 아이가 상추 하나를 뽑아도 계속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이: 저희 딸은 전형적 자폐아인데요. 뭐든지 처음 하는 경험은 낯설어하고 시키면 거부해요. 그래서 소리 지르는 거거든요. 그래도 계속해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억지로라도 해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요.

김: 사실 우리 아이는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종일 칭찬받을 일이 없어요. 제지당하는 게 일상이죠. 그러니까 조그만 것도 칭찬해주면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를 꼬집거나 자신을 때리는 행동을 덜 하는 거예요. 저는 집에 표 그려놓고 오늘 칭찬 몇 번 했는지 체크까지 해요. 이걸 비장애 자녀를 키울 때도 알았으면 더 잘 키웠을 텐데!

-아이를 낳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정: 회사 다녔어요. 재준이 임신하고 5개월까지 다녔죠.

장: 저는 어린이집 운영도 했고 강사도 했어요.

조: 저는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장애인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게 됐을 때 시댁에선 당연하게 받아들이셨는데, 친정 엄마는 너무 서운해하시더라고요.

이: 대신 우리 회장님은 영화배우가 되셨잖아(웃음).

장: 저희 모두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동료 상담가로 활동하거든요. 선배로서 이제는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한테 직장에 끝까지 다니라고 얘기해요. 어떻게든 방법은 찾을 수 있으니까 절대 일을 놓지 말라고.

엄마들은 2017년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서진학교 설립을 이끌었다. /영화사 진진

◇우리는 죄인 아닌 죄인

-학교 가는 길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지 않았나요.

조: 일반 학교에 가면 아이가 수업을 방해한다고 민원하는 학부모가 많았어요. 우리 아이도 교육권이 있는데 당신 아이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으니 어떡하란 말이냐 이렇게 주장하세요. 그럼 저희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는 거죠.

이: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본인 자녀는 대학을 가야 하는데 한 명이 자꾸 수업 방해를 하니까.... 이해도 돼요. 지금 교육 시스템에서 우리 아이들만의 특성을 살려서 지원해주긴 어려운 거죠.

정: 선생님이 애들이랑 수업하면 우리 아이는 할 게 없으니까 매일 낙서를 해서 하루에 한 권씩 종합장을 썼어요. 어느 날 애 아빠가 카트를 끌고 종합장 100권을 한꺼번에 사 왔더라고(웃음). 그만큼 무료하게 3년을 보낸 거죠.

장: 서울 시내 사립고 중에는 특수 학급이 있는 학교도 거의 없어요. 자라면서 아예 장애인을 보지 않고 크면 장애인이 낯설고 같이 있는 게 불편한 거예요.

조: 아이들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이 되거든요.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자연스럽게 볼 법도 한데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을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아무래도 그런 데서 발달장애인이 뛰어다니면 엄마가 곤란해지니까요. 그래도 저는 엄마들한테 자꾸 아이들을 노출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사람들이 목욕탕에서도 보고, 마트에서도 볼 수 있어야 자연스러워지는데 우리 사회에선 어느 날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 되잖아요. 자주 만나다 보면 특별하지만 위험한 친구는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거든요.

김: 쫓겨날 때도 많아요. 헬스클럽이나 도서관·카페·식당 문턱이 너무 높아요. 거부당할 각오를 하고 가야 해요.

이: 강서구에 있는 볼링장을 2013년부터 다녔는데요. 자꾸 가니까 손님들도 익숙해지더라고요. 아이가 옆 레인으로 가면 “여기 말고 저기!”라고 자연스럽게 알려주기도 하고요.

장: 한번은 나이트클럽 사장님한테 협조를 구하고 장애인의 날 기념 축제를 한 적이 있거든요. 번쩍번쩍한 조명 밑에서 춤을 추니까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조: 엄마들이 더 좋아했죠(웃음).

장: 처음엔 낯설어하던 나이트 직원들도 좋아하셨어요. 보통 손님이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데 우리 애들은 열광적으로 즐거워하니까.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하루하루 애타게 지나가

조: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도 일하는데요. 저도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장애인도 당당하게 ‘나 장애인이야’라고 해도 되고, 비장애인도 거리낌 없이 ‘아, 당신은 장애인이시군요’라고 해도 된다는 걸요. 저도 우리 아이가 ‘당당한 장애인’이 될 수 있게 더 애써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김: 장애인 엄마의 가장 큰 자격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출발할 수 있어요. 장애 자녀를 창피해하거나 장애가 나쁜 것처럼 인식해버리면 다른 비장애 자녀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거예요.

-특수학교를 세우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했던 2017년 이후로 우리 사회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이: 사건 이후로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발달장애인은 뭐 하나 거저 얻어지는 게 없군요.’ 엄마들이 왜 저렇게 난리를 쳐야 했는지 이해가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조: 사건 이후 교육부에서 2022년까지 특수학교를 최소 22곳 더 만들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9곳이 늘었어요. 약속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디죠.

김: 아주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되는 게 없어요. 저희가 몸으로 부딪치고 노력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얻어져요.

장: 남연 대표님이 영화 속 인터뷰에서 ‘하루하루가 애타게 지나가고 있다’고 하시거든요. 그 말이 딱 맞아요. 하루빨리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들은 하루하루 늙어가니까. 애가 타요, 정말!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다는 어머니들과 웃다가 울다가 한 시간 반이 훌쩍 흘렀다. 인터뷰가 끝나자 어머니들은 “30분 뒤 국회에서 미팅이 있다”며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장애 학생의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워질 때까지, 모든 장애인이 당당한 장애인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엄마들은 계속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