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약 10년간 서울 전역에 ‘마을 생태계’를 조성한다며 추진한 주민 공모 사업 중 상당수가 ‘예산 퍼주기’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0억원대 세금이 투입됐지만, 요리나 파티, 운동이나 독서 모임 등 몇몇 주민들의 취미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2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주민 공모 사업은 서울 주민 3명 이상이 자치구와 협의해 지역 특성에 맞는 모임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시와 자치구가 사안에 따라 모임별로 50만~1000만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7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모임 5879개에 총 61억원이 투입됐다. 이 사업이 시작된 2012년부터 따지면 총 100억원 이상의 세금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의회 사무처는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서울 자치구 3곳의 공모 사업 50건을 분석한 결과, 뜨개질이나 공예품 만들기, 보드 게임, 족구, 악기 배우기 등 취미 활동 성격의 모임이 46%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본지가 김소양 서울시의원(국민의힘)과 함께 자료를 분석해보니 실제 세금을 지원할 만한 사업인지 의심스러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

서울 A구는 야구 모임에 200만원을 지원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회원 10여명이 7개월간 월 1~2회씩 아이들과 함께 야구 훈련과 교육을 했다”고 써냈다. 펜션을 빌려 1박 2일간 야구 교육을 하고 물놀이, 바비큐 파티도 벌였다고 했다. 인문학 수업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100만원을 타간 이모씨 등 11명은 지원금 절반인 50만원을 14차례에 걸쳐 밥을 먹거나 간식을 사는 데 지출했다. 또 책값으로 19만원, 강사를 불러다 강의를 듣는 데 20만원을 썼다고 했다.

B구에서 99만원을 지원받은 자전거 타기 모임은 “12명이 4개월간 10여 차례 함께 자전거를 탔다”고 적어냈다. 모임 홍보용 자전거 모자, 팔 토시 등을 사는 데 40여만원을 썼고, 13만원가량은 속도계나 자전거 잠금장치 등을 구입하는 데 썼다. 나머지 지원금 대부분은 식비, 간식비였다. C구에서는 20여명이 파티용 소품과 과자를 함께 만든 뒤, 야외에서 2차례 공연을 곁들인 파티를 열고 297만원을 지원받은 사례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직접 부담한 비용은 30만원이었다. 이 밖에도 반찬을 만들어 주민들과 나누는 모임을 한다고 모인 주민 6~8명이 85만원을 타간 일도 있었다. 12번에 걸쳐 모임을 했는데, 지원금 대부분을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사는 데 썼다.

지난해까지 9년간 이런 주민 공모 사업에 참여한 시민은 약 13만명으로 집계됐다. 100억원 이상을 썼지만, 정책 효과는 1000만 서울 시민 중 1% 남짓한 이들만 누린 셈이다. 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 등 소수자인 이웃과 함께한 좋은 사업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시 내부에선 “실적 쌓느라 무리하게 지원 건수를 늘리다 함량 미달인 사업에도 돈이 가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박 전 시장 때는 예산을 잘 썼는지 까다롭게 검증하려고 하면 시민 단체 등을 통해 시장실로 민원이 오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오세훈 서울시’는 이와 유사한 마을 관련 사업에 대해 철저히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김소양 서울시의원은 “마을 생태계 사업은 서울이라는 대도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상적으로만 접근하다 실패한 대표적 사례”라며 “사업 추진을 위해 10년 가까이 자치구별로 만든 관련 조직에 들어간 비용도 많아 구조 조정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