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가상화폐에 대한 ‘위기론’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가상화폐시장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제도권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꾸준히 가상화폐의 부정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책을 제안해 왔다. 역사가 짧은 가상화폐 시장은 그러한 개입에 매우 취약해 부정적인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시세가 요동쳤다.
2018년에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해 가상화폐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하는 속칭 ‘대장주’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며칠 사이 2100만원에서 1400만원 대로 급락했다.
지난달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자산. 세금은 받지만 보호할 생각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 매매는 투자가 아닌 잘못된 길”이라며, “어른들이 가르쳐야 된다”라는 발언까지 덧붙이며 큰 반발을 낳았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청년들에게 잘못됐니 아니니를 따지는 건가”라며 비판했다.
가상화폐 거래자들 사이에서는 각각 ‘박상기의 난’, 그리고 ‘은성수의 난’이라고 회자된다. 특히 ‘은성수의 난’은 곧바로 이어진 바이든 미 대통령의 ‘자본세’ 발언과 시기를 같이해 사상 초유의 급락을 낳았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이런 외부 충격에 따른 낙폭을 번번이 회복하고 전고점을 돌파하는, 소위 ‘떡상’을 이어왔다.
물론 가상화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상화폐는 어떠한 실용적인 쓸모가 없는 상품이고 오직 투자자들의 거래를 통해 그 가치가 정해진다. 실상 가격 결정을 예측할만한 근거(레퍼런스)가 매우 빈약하다. 투자자들의 결정에 따라 극도로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기에 ‘블라인드 투자’에 가깝다.
이런 변칙성 때문에 ‘화폐’라는 이름과는 달리, 가상화폐는 단지 투자자산으로서 취급되고 있다. 일본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2019년에 암호화폐(가상화폐)를 ‘가상통화’에서 ‘암호자산’으로 용어와 취급을 바꾸는 법안을 입법했다.
교환가치도 현물가치도 없는 가상화폐에 대한 우려는 분명 설득력 있는 경종이다. 그렇지만 신용화폐는 옳고 가상화폐는 틀렸다는 뜻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상 가상화폐와 신용화폐는 그 맥락이 같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 대통령은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라는 선언으로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그 뒤로 신용화폐 제도는 변동환율제에 의해 가치가 결정돼왔다. 중앙은행이 신용화폐의 액면가 그대로 수매한다는 약속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명확한 실물에 의거한 기준 없이 오로지 ‘교환 가치’로만 그 시세를 유지한다는 점은, 신용화폐와 가상화폐가 서로 같다. 가상화폐는 이 시스템에 몇 가지 특화된 IT 기술을 접목해 전산화한 것이다. 신용화폐가 가상화폐보다 더 레퍼런스(근거)가 뚜렷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신용화폐에는 중앙은행이 있고 가상화폐에는 그런 조정자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화폐는 해당 화폐의 가치를 유지할 주체가 불분명하여, 가치 보전이 어렵다는 불안요소가 있다. 이는 화폐로서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볼 수 있듯이, 현재 가상화폐는 교환 매개인 화폐로서보다 투자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시되고 있어 조정자의 역할은 필수적이라 할 수 없다.
중앙은행의 존재 문제도 그렇다.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화폐를 무한정 발행할 수 있어 신용화폐는 언제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신용화폐가 등장한 이후 꾸준히 지적받고 있는 제도의 허점이다. 이를 마냥 장점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닉슨 쇼크’ 이후 구축된 세계 신용화폐 경제에서는 꾸준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각국 정부에서 ‘양적 완화’를 앞다투어 실시하는 동안, 화폐가치가 급락하고 여타 자산의 가치가 급등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가상화폐는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다. 화폐 가치를 거래자들의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한다. 신용화폐가 꾸준히 앓고 있는 과도한 유동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거래자들 각자가 거래 장부를 갖고 서로 대조하며 위조를 예방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다.
가상화폐는 시작부터 중앙은행 중심의 신용화폐제도에 대한 반발로 출현했다. 2008년 ‘사토시 나가모토’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개발자(혹은 개발자 그룹)가 비트코인 논문과 함께 프로그램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해당 논문에서 ‘재래 통화의 작동 원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하다’면서 기존 금융제도에 대해 비판했다.
현행 신용화폐 경제에서 정부 실패는 곧잘 반복된다. 돈을 푸는 순간 일시적으로 시장이 교란되는 것을 경기회복으로 오해하고, 그 오해를 근거로 ‘돈을 풀면 경기가 살아난다’라는 신앙을 고집하며 여덟 번 실패해도 아홉 번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풀고 있다.
약 80조의 정책적 지원금이 풀린 코로나 사태 와중에 실물경기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는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나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했고, 가상화폐 거래량 역시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의 급등과 급락은, 가상화폐의 본질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현행 신용화폐 제도의 허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분명히 투기성으로 비난받을만한 문제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근본적 가치를 무시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섣불리 그 미래를 단정할 수도 없다. 이 와중에 가상화폐 시장의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지난 4월 6일 기준, 세계 가상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은 2조200억 달러(약 2,280조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코스피 시가총액보다 더 큰 규모다.
한 나라의 증시 총액보다 큰 규모의 시장이라면, 이미 소수 사기꾼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규모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이런 시장을 마냥 지하경제로만 취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지 의문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특히 청년 세대들은 그 시장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침체된 경기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 주위에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린 이들이 생겨났다. 500% 수익률은 기본이고, 일찌감치 이 시장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수 천 퍼센트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물론 손실을 본 친구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심지어 손실을 보더라도, 성장 중인 시장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결국 다시 오른다”라는 기대를 갖고 버티는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 정부가 실패하고 야당도 실패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린 것이 바로 가상화폐였다.
가상화폐 광풍을 비난하기 전에 그런 광풍을 초래한 제도적 실패와 그런 광풍에 기대야만 했을 정도로 실물경제가 망가진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가상화폐 광풍은 참혹한 현실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현상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것은 역사적 사례에서 봐도 결코 좋은 결실을 낳았던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