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사는 이모(31)씨는 지난 28일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서 ‘자녀 성(姓)’ 얘기를 하다 말다툼을 했다. 작년 3월 결혼한 이씨와 남편 최모(32)씨는 자녀 둘을 낳을 계획을 갖고 있다. 뉴스에서 ‘자녀가 꼭 아빠 성을 따르지 않고 부부가 협의해서 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한다’는 걸 보고, 이씨가 “애 둘 중 한 명한테는 ‘이씨’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남편이 “한 가정에서 자녀 둘이 어떻게 다른 성을 쓰느냐”고 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04.27./뉴시스

여성가족부가 지난 27일 ‘부성(父姓) 우선주의 원칙’을 폐기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한 뒤 곳곳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현행법은 자녀의 성은 아버지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신고 시 부부가 이를 협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출생신고 시 ‘부모 협의하’에 성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대(代) 잇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선 시기상조”라는 우려와 “성 평등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동시에 나왔다.

28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정경모(71)씨는 “미혼모나 한 부모 가정처럼 불가피한 경우면 모를까, 자녀끼리 성이 달라지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친가·외가 구분도 없어지고 전통적인 가족 단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종로구 탑골공원을 산책 중이던 김광우(74)씨도 “난 손자가 둘밖에 안 되는데 그 애들에게 만약 며느리 성을 줬으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을 것”이라고 했다.

중년층 부모의 심정도 미묘하게 달랐다. 결혼한 30대 두 딸을 뒀다는 허경욱(65)씨는 “우리 딸들은 남편하고 잘 합의해서 손주 성을 정하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내가 만약 아들이 있었으면 아내 성으로 손주 이름 바꾸게 두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젊다고 모두 변화를 반기는 것도 아니다. 직장인 김모(여·26)씨는 “지금까진 아빠 성만 썼으니 내 자식만큼은 엄마 성을 따르도록 하고 싶다”며 “만약 미래 남편이 자기 성을 고집하면 둘 낳아서 각자 주자고 할 거고, 여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만날 생각조차 없다”고 했다. 반면 대학 3학년인 박모씨는 “좋은 취지의 법 개정이라곤 생각하는데 아직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부계(父系) 전통을 대표하는 집성촌(集姓村), 종친회(宗親會)는 우려가 컸다. 28일 오후 서울 강동구 강일동에서 만난 ‘남평 문씨 25대손’ 문광섭(74)씨는 “법이 개정되면 집성촌은 다 사라지지 않겠느냐”며 “성과 본은 안정적인 가족 체제를 상징하는데, 족보가 무의미해지면 사회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채씨중앙종친회 관계자도 “재산 분할 문제 등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젠더(gender·성)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초(男超) 커뮤니티에선 “우리나라가 5000년 동안 지켜 온 관습을 왜 바꿔야 하나” “여성 군필자에 한해 아이한테 성 물려줄 수 있게 하라”는 의견이 많다. 반면 맘카페 등에는 “남자들이 성씨에 집착하는 게 이상하다” “배 아파 낳고 키우는 건 엄마인데 당연하다고 본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박사는 “여성이 지금까지 행사하지 못했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재혼 가정 등 다양한 가정들이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씨의 선택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문중이나 주변 가족들의 반대, 유산 상속의 권리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