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3기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시흥지구에서 광명시와 시흥시 소속 공무원 14명이 토지를 매입·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각 자치단체는 사전에 개발 정보를 입수해 투기를 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서둘러 진행된 조사여서 차명 보유 등은 파악하지 못했고, 14명이 보유한 토지를 모두 투기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10일 지난 4일부터 시 공무원, 산하기관인 광명도시공사 직원 등 1553명을 조사한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직원 6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안에 있는 토지를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한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이전 5년 동안 취득한 토지가 대상이다.
광명시는 광명·시흥 신도시의 토지를 취득한 직원은 5급 2명, 6급 3명, 8급 1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취득한 토지는 임야·대지·전답 등으로 면적은 100~1322㎡였다. 취득 시기는 2015·2016·2019년 각 1명, 2020년 3명으로 조사됐다. 광명시는 정부합동조사단과 협력, 직원들이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취득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시흥시도 이날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에 직원 8명이 토지를 보유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근 5년 이내에 취득한 사람은 3명이었다. 이 가운데 1명은 상속으로, 1명은 공무원이 되기 전 매입한 것이어서 투기로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5급 A씨는 작년 10월 경매를 통해 제방 땅 91㎡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제방은 토지 보상 시 별도 평가 대상이 된다”며 “신도시 예정지 내의 제방 땅까지 산 것은 관련 전문 지식이 없으면 시도하지 않을 투자”라고 말했다.
임병택 시장은 “관련 공무원의 투기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해 위법 행위가 의심되면 정부합동조사단에 통보하고, 자체 징계 및 수사 의뢰 등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LH의혹 전국 확산… 부산·충청·光州도 공무원 투기 조사
“더는 LH를 믿을 수 없다. 3기 신도시를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10일 오후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서 기자회견을 연 임채관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공전협) 의장은 “신도시 등을 조성하며 민간 토지주의 사유재산을 헐값에 가져가던 LH가 스스로는 땅 투기를 일삼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공전협은 3기 신도시 등 전국 65곳의 공공 택지 토지 소유주가 모인 단체다.
이들은 토지 보상금 산정 과정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대립했지만, 정부의 택지 개발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전면 반대’로 입장이 바뀌었다. 한 토지주는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도 포기한 사람들에게 평생의 터전을 넘길 순 없다”고 말했다.
◇분노한 신도시 주민들 “개발 계획 전면 백지화해야”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8개 지역의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발본색원’ ‘무관용 처벌’ 등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땅 투기 의혹의 파장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토지주들이 토지 보상 협의를 거부하고, 3기 신도시 전면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계획한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 줄줄이 연기될 판이다.
일단 지금까지 발표한 3기 신도시 6곳, 24만 가구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2025년부터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토지주 반발로 보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첫 삽조차 뜨기 어렵다. 공전협은 “정부가 LH 주도의 택지 개발을 강행한다면, 토지 보상 거부 활동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토지 개발 업체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수도권 택지 개발 사업이 ‘올스톱’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32만 가구 등 전국 83만 가구를 공급하는 내용의 ‘2·4 대책’도 이번 사태로 인해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83만 가구 대부분 민간 토지를 공공 주도로 개발하는 구조인데, 핵심 사업 주체가 LH다. 땅 소유자가 반발하면 주택 공급 규모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부산시는 10일 시청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서구 대저동 ‘부산연구개발특구’ 신도시 부지 투기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같은 날 충청북도도 지역 내 산업단지 개발 관련 공직자 투기가 있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양승조 충남지사와 이용섭 광주시장도 직원들의 투기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토지 보상 제도 개선 검토, 집값 자극할 수도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 보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신도시 토지 수용에서 나오는 막대한 보상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년부터 현금 대신 다른 땅을 주는 대토(代土) 보상 활성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토지 수용에 원만히 합의하는 대가로 신도시 내 단독주택 용지나 아파트 입주권을 주는 ‘협의 양도인 택지’ 관련 법령을 개정한 것도 같은 취지다.
그러나 LH 직원들이 이런 규정을 이용해 토지 지분을 쪼개 보상 이익을 극대화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대토 보상을 제한·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이나 LH 등 공기업 직원 대상 대토 보상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LH 직원을) 협의 양도인 택지 등에서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원주민만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외지인은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토 방식을 줄이고 현금 보상을 확대하는 것도 예상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해 2·4 대책을 통해 전국 83만 가구 공급 발표로 수십조원대 토지 보상이 예정돼 있는데,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면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토 보상을 활성화하려니 투기꾼이 몰리고, 현금 보상을 늘리면 집값을 자극하니 정부가 난처한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