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 간장, 혼합 간장, 산분해 간장. 간장 라벨을 유심히 보신 적이 있는지. 식약처의 ‘식품공전’에는 고추장은 한 종류, 된장은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지만 유독 간장은 다섯 종류로 분류된다. 식약처는 이 분류에 더해 ‘혼합 간장’에 혼합 비율을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이태경 기자

‘간장 독립 만세’ ‘산분해 간장은 일본 식민지 유산’. 지난 광복절 직후, 간장협회 주최로 ‘산분해 간장 추방 캠페인’이 열렸다. 산분해 간장은 발효를 거치지 않아 ‘간장’이 아니고, 발암 가능 물질까지 들어있어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산분해 간장=일제 잔재=발암 물질’이라는 프레임에 여성,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는 뜨겁게 반응한다. “이런 걸 왜 만드냐”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만 사먹어야겠다.” 이미 서울시 등 지자체와 공기업들은 전통장 담그기, 동네 장독대 만들기에 예산을 지원해오고 있다. ‘신토불이’ ‘우리 몸엔 우리 것’이라는 ‘유사 과학’은 이제 일부에게는 진리가 됐다.

식약처는 식품의 기준과 규격을 ‘식품공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일종의 ‘식품 헌법’이다. 식품공전에서는 된장을 전통 된장과 된장 두 가지로, 고추장은 단일품으로 나눈다. 간장은 전통 간장, 양조 간장, 산분해 간장, 발효 간장, 혼합 간장 등 무려 다섯 가지다. 조선간장, 진간장, 국간장 등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호칭과는 전혀 다르다. 기업⋅이익단체가 각자 유리한 조항을 넣겠다고 덤벼든 결과다.

여기에 더해 식약처는 ‘국민 불안’을 명분으로 지난해 5월 ‘식품 등의 표시 기준’ 일부 개정안을 고시, 시행을 앞두고 있다. 혼합 간장의 전면 상표 부분에 ‘○○%, 양조간장 ○○%’ 식으로 혼합 비율을 적시할 예정이다. ‘식품 표기 통합 및 간소화’가 식약처 원칙이지만, 간장 분류는 거꾸로 간다.

향토 재료, 전통 제조법을 숭배하는 ‘음식 원리주의자들’ 목소리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우리 게 더 좋다’고 우기는 건 마케팅의 기본이다. 그러나 특정 집단의 가치관, 기업의 주장이 법이나 규정이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식품 행정이 포퓰리즘이 아닌 근거에 따른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간장협회 “한식에는 한식 간장, 뭐가 문제인가”

먼저 ‘간장 독립 만세’라는 구호로 눈길을 잡는 (사)간장협회의 고은정 준비위원장의 말을 들어봤다.

―간장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간장 제조자와 전통 장류 및 식생활 교육 강사 등 100명의 단체다.”

―행사에서 나온 구호가 선정적이었다.

“그렇게 봤다니 당황스럽다. 선정성을 의도하지 않았다. 부모나 대기업 중심 식생활에서 독립하자는 취지였다. 산분해 간장을 퇴출해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 ‘한식에는 한식 간장’이란 구호가 향후 활동 방향이다.”

한 단체 행사에 나온 피켓.

―산분해 간장이 왜 문제인가.

“과학자들은 발암 물질이 기준치 이하라 문제가 아니라 말하지만, 어린이나 가임기 여성 등에게 위험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협회 추진 사업에 ‘위생 관리 시스템(HACCP) 인증 완화’ 대목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동의가 안 된다.

“우리 전통 간장은 공기 중의 호기성(好氣性)균을 활용한다. HACCP 인증은 전통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장에도 위생 문제가 있지 않나.

“극소수의 문제다. 단속이 아니라 교육과 계도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

화학자 “전통 장 제조법이 더 건강하다는 건 비과학”

과학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MSG 유해론’이 근거가 없다고 주장해 온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간장 논란’을 “반박하기 매우 어렵다”고 했다.

―뭐가 어렵다는 건가.

“비논리⋅무논리를 어떻게 과학으로 깨겠나.”

―산분해 간장, 화학 간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께름칙한 것도 사실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리되어야 맛이 난다. 산분해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대표적 기술이다. 일본이 이 원리를 간장에 적용했다. 전 세계 소스류에 쓰인다.”

―이 과정에 염산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과거 이영돈씨 같은 음식 전문 PD까지 나서서 ‘폭로’하듯 밝혔다.

“발효를 통해 단백질을 분리하는 게 전통 장 제조법이다. 산분해는 염산으로 단백질을 깨는데, 속도가 빨라 대량 생산에 쓰인다. 용어에 속지 말라. ‘신물이 넘어온다’ 할 때 그 신물(위산)에도 염산이 들어있다. 염산에 양잿물을 동량 섞으면 물과 염화나트륨, 즉 소금물로 변한다. 이게 중화다. 염산⋅양잿물 이 단어를 결합해 독성 운운하면 곤란하다. 중학교만 나오면 아는 화학식이다.”

식약처의 공식 간장 분류

―그 과정에서 3-MCPD(모노클로로프로판디올)라는 발암 물질이 나온다는데.

“콩 속 지질이 염산과 만나면 생성될 수 있다. 고온에서 생성된다. 온도를 낮추면 줄어든다. 빵, 치즈 가공 식품, 도넛, 과자, 티백 차에서도 확인됐다. IARC(국제암연구소) 분류법에서 이 물질은 2B군에 속한다. ‘동물 실험에서 발암 가능성이 확인됐으나 인체 실험에서 확인된 바 없다’는 뜻이다. 빵⋅차에 든 3-MCPD 수치가 더 높다. 더 위험하다는 게 아니다. 그만큼 식품에 광범위하게 들어있다는 얘기다.”

―전통장은 오랜 발효 숙성을 거치니 더 안전한 것 아닌가.

“전통에 대한 환상이다. 발암 물질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과량 노출’되면 위험성이 커진다. 더 무서운 건 ‘신경 독성’이다. 얼마 전, 전통 된장 30여 품목에서 아플라톡신균이 검출됐다. 독성이 강하고, 인체 발암성도 확인된 IARC 1군 발암 물질이다. 이 균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메주를 오염시킨다. 무균 시설을 갖춘 공장 된장에서는 하나도 안 나왔다. 뭐가 더 위험해 보이나.”

―식약처가 간장통 전면에 산분해 간장 비율을 표기하는 안을 준비 중이다.

“(생수통 후면 라벨을 보이며) 여기 ‘무기 물질 표시’를 한번 봐라. 칼슘⋅나트륨 같은 무기 물질 함량이 죽 적혀 있다. 식약처 행정이 이렇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정보를 주고, 책임 회피 하는 거다. 산분해 간장 유독성 데이터가 있나? 알면서도 이런 행정을 한다.”

식약처 “국회와 소비자 단체가 요구해 온 것”

공은 다시 식약처로 넘어갔다.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의 입장을 들었다. 용어 하나에도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입장이었다.

―산분해 간장이 유해한가.

“위해 우려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식혜⋅된장⋅커피 등은 놔두고 왜 간장 라벨만 바꾸나.

“소비자단체와 국회에서 꾸준히 지적해왔다. 소비자 알 권리 차원이다. 중소 업체의 어려운 사정도 감안했다.”

―압력 단체가 요구하면 다른 식품 표기도 바꿀 건가.

“그런 건 아니다. 국제적인 흐름도 고려했다. 조사해보니 양조 간장 99%에 산분해 간장 1%를 섞는 업체도 있었다. 소비자의 선택권에 초점을 맞췄다.”

음식 전문가 “건강 위험은 없다. 맛은 다르다. 갈 길도 다르다”

식품에 대한 지식⋅경제력⋅취향이 다 다른 ‘소비자’라는 거대 집단으로 문제가 넘어간 셈이다. 전문가들 입장도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이택희 음식 칼럼니스트는 ‘위해성’이 아니라 ‘맛 차이’를 거론했다. 그는 “산분해 간장은 ‘절대 불가’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소비자가 간장 맛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라고 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과하다”고 했다. “식품 표기는 영양과 식품 안전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 바꿔야 한다.”

[”쟤네 우물에 독이 들었다” 식품업계 폭로전]

MSG·혼합간장 논란 광고로 상대제품 흑색선전

‘미풍’으로 ‘미원’의 아성을 넘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제일제당이 혼합 조미료 ‘다시다’를 내놓은 것은 1975년이었다. 초기에는 고전했지만 80년대 이후 결국 시장을 장악했다. ‘쇠고기 다시다’의 공이 컸다. 국, 찌개를 사랑하는 ‘국물의 민족’에게 ‘소고기와 야채가 든 조미료’는 필요 아이템이었다. TV, 신문 광고에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맏며느리 김혜자가 나왔다. “그래 이 맛이야”는 유행어가 됐다. MSG(글루탐산나트륨)를 넣었지만, 광고에서는 늘 ‘천연 조미료’ ‘고향의 맛’이라고 강조했다. ‘화학 조미료 미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미원’이 사라지고, ‘우리 집은 미원 안 쓴다’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원이 아예 죽은 것도 아니었다. 미원은 누구나 먹지만, 누구도 먹지 않는 ‘어둠의 조미료’가 됐다.

선착순 1만명에게 스웨터 혹은 금반지를 준다는 파격적 경품 행사로 논란을 부른 두 회사의 조미료 광고들(조선일보 1970년 2월 6일 자(위), 2월 14일 자).

조미료 시장에 뒤늦게 가세한 럭키가 또 한번 파란을 일으켰다. 1993년 ‘맛그린’을 출시하며 ‘타사 제품에는 유해성 논란이 있는 MSG가 99~100% 들어 있다’는 문구를 확실하게 넣었다. ‘다시다’를 때린 것이다.

미원도 혼합 조미료 ‘맛나’ ‘감치미’를 출시했지만 다시다를 당하진 못했다. 미원은 1997년 사명을 ‘대상’으로 바꾸고, 장류 시장을 공략했다. 그해 ‘청정원 햇살담은 양조간장’을 출시했다. ‘진간장의 비밀 그것이 알고싶다’ ‘그동안 먹고 있던 간장은 혼합 간장이었다’고 선전했다. ‘혼합 간장=나쁜 간장’ 프레임을 짠 것이다. ‘진짜 간장, 가짜 간장 찾기’ 같은 행사도 열었다.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으로 남의 제품을 깎아 내렸다. 1985, 1996년 두 차례의 ‘독성 간장 파동'으로 소비자들이 ‘산분해 간장’을 의심하던 터였다. 본격적으로 산분해 간장 시비가 시작됐다. 이후 식품기업 간 전쟁은 ‘쟤네 우물에 독이 들었다’는 폭로전이 주를 이뤘다. 소비자에게 불안을 심은 후, 자기 상품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지금의 간장 논란은 ‘공장 간장 유해론’에 반일 정서, 신토불이 주장이 덧붙여지고, 대기업, 전통장 메이커, 지역 운동권까지 얽혀있다. 전문가들은 이 싸움에 ‘돈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만 실명으로 반박하기는 두려워한다. 이 침묵의 시간에 ‘산분해 간장 유해론’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크며, 과학을 불신하는 일부 소비자를 파고들며 괴담을 생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