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5일 국회에서 진보당 윤종오 의원과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주최한 '65세 법정 정년 연장 입법 연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남강호 기자

양대 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5일 국회를 찾아 올해 안에 법적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처리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에 민주당과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참여해 이 문제를 논의해 왔는데, 더 이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관련 입법을 강행하라는 압박을 한 것이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65세 정년 연장 법안의 2025년 국회 입법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더불어민주당 정년 연장 특위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안은 법적 정년을 단계적으로 1년씩 연장해 65세로 맞추되, 특정 시점까지는 경영계가 요구하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특위는 60세에서 61세로 정년 연장이 시작되는 시점을 비롯해, 몇 년 간격으로 정년을 1년씩 늘릴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정년 65세땐 청년 고용 충격… 1년씩 연장 유력

이날 양대 노총 기자회견은 “정년 연장 법안을 올해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들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과 연계한 법정 정년 연장을 2025년 안에 추진하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과제이자, 노총과 맺은 정책 협약”이라며 “결단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올해 안에 정년 연장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특히 내년으로 넘어가면 전국 지방선거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우선순위 등에서 밀려 법안 처리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커질 뿐 아니라, 일률적 정년 연장 반대를 주장하는 경영계의 목소리 역시 힘을 받을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정년연장특위 간사인 김주영 의원은 지난 3일 “속도감 있게 논의해 연내 입법 목표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여당 원내 사령탑인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정년 연장은 진지하게 조기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연내 처리 방침에 무게를 뒀다.

민주당 정년연장특위는 올해 4월 발족한 뒤 7개월가량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관련 논의를 진행해 왔다. 노동계는 65세의 일률적 정년 연장을, 경영계는 60세 도래 시 퇴직 후 선별적으로 재고용하는 안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특위 내에선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의 의견을 일부 섞은 절충안(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시점부터 몇 년 단위로 1년씩 정년을 늘려 65세로 맞추되, 정년이 65세가 되는 시점 전까진 경영계가 주장해 온 ‘퇴직 후 재고용’을 시행한다는 게 골자다. 61세로 정년 연장이 시작되는 시점을 이재명 정부가 끝나기 전인 2029년쯤부터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날 양대 노총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경영계의 ‘퇴직 후 재고용’ 주장에 대해 “사업주 재량하에 뽑고 싶은 사람만 계약직으로 뽑아 불합리한 방식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고용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현재 특위 내에선 “정년 연장 시점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수급과의 공백기에 소득 감소를 막기 위해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국민연금 수급은 1961~64년생은 63세, 1965~68년생은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부터 시작된다.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 없으면 소득 공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양대 노총의 국회 공동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여권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데 대한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이날 “노사 입장은 정년연장특위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됐고 사회적 논의도 숙성됐다”고 강조했다. 합의 없이 법안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을 두려워하는 민주당에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다음 달 초쯤 법안이 제출될 전망”이란 얘기들이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에 미칠 여파다. 민주당 정년연장특위에서 논의 중인 ‘퇴직 후 재고용’은 특정 시점까지 한시적으로만 시행되는 데다, 임금 삭감 필요성 등 비용적 측면에 대해선 분석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상당수 기업이 근속 기간에 따라 임금을 높게 주는 호봉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채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포럼에선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렸을 때 청년층(15~34세) 고용이 16.6%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영계에선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이 이뤄지면 기업의 임금 지급 부담이 증가해 고용 문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청년 고용이 줄고, 고용 시장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선 근속 30년 이상 장기 근속 근로자 임금이 697만1000원(2020년 기준)으로,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임금(236만5000원)의 2.95배에 달한다. 일본(2.3배)·독일(1.8배)·프랑스(1.6배) 등 다른 주요 나라들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이뤄진다면 대기업보다 중소·영세 업체가 비용 부담에 허덕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정년 연장의 혜택은 대기업, 공공기관 정규직들이 주로 누릴 가능성이 크다. 양대 노총은 이날 “우리 사회에서 괜찮은 정책들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진행해 왔고 그것이 일반화돼 왔던 과정”이라고도 했는데, 이를 놓고 “대기업·공공기관 직원들이 주로 이득을 보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처럼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을 특정 연령으로 법으로 정한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영국·호주 등은 정년 제도를 아예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