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원룸에 틀어박힌 채 18억원을 송금하려던 전문직 남성을 경찰이 발견해 피해를 막았다.
4일 대구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40대 남성 A씨가 달서구의 한 원룸에서 발견됐다. 그동안 투자한 주식 등 금융 자산 18억원을 현금화해 신원 미상의 보이스피싱범의 사기 계좌로 넘기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정작 경찰이 찾아갔을 때도 A씨는 “정말 경찰이 맞느냐, 신분을 증명해보라”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앞서 지난달 중순쯤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분간 보호관찰을 통해 범죄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의 문자와 URL(인터넷 주소 바로가기)을 받았다. 무심코 A씨가 URL을 누른 순간 A씨의 휴대폰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해킹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보이스피싱범은 이후로도 A씨에게 전화나 문자로 “범죄에 연루된 상황이니, 원룸을 하나 잡아서 외부와의 연락은 끊고 우리가 지시하는 대로만 하면, 계좌의 자산을 몰수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A씨는 지난달 22일부터 일주일간 음식과 생활용품들을 챙겨 원룸에 칩거했다. 이 기간 오래 투자했던 주식들과 예·적금 등 금융 자산을 모두 현금화해 약 18억원을 확보했다.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이 “추후 송금 일정을 알려줄 테니 돈을 있는 대로 마련해서 대기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 기간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전화가 오면 “일하느라 바쁘다” “지금 전화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황급히 끊었다고 한다.
이 같은 A씨의 모습에서 지인 B씨가 의아함을 느꼈다고 한다. B씨는 “(A씨가) 평소라면 전화도 잘 받고 편안하게 대화했을 사람인데, 말도 앞뒤가 안 맞고 어딘가 이상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A씨가 위험한 상황에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와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면서 위치를 추적했다. 간간이 이어진 통화에서 A씨가 불안하고 초조한 목소리로 답하자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A씨에게 범죄 예시와 보이스피싱 예방 수칙을 문자로 반복 전송했다.
처음엔 경찰이라는 말도 믿지 못하며 통화를 끊던 A씨였지만, 경찰이 40분에 걸쳐 전화와 문자로 설득한 끝에 A씨가 스스로 칩거하던 원룸을 찾아내면서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A씨가 보이스피싱범에게 송금한 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직업과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며 “최근 구속 수사나 보호관찰 등을 구실로 피싱범의 지시만 따르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발견되는데, 수사기관은 절대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