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공천 뇌물’ 사건 핵심 피의자인 김경(61) 서울시의원이 26일 시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씨가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이자 서울 강서갑 현역인 강선우 의원에게 1억원을 건넸다는 내용의 대화 녹음이 공개된 지 28일 만이다.
대화 녹음이 공개된 지난달 29일 김씨는 입장문을 내고 “엄격한 심사 절차를 거쳐 공천을 받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날 발표한 사퇴 입장문에서 “상응하는 법적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금전 문제에 연루된 것만으로도 저는 시민을 대표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 시의원직 사퇴로 그 책임을 대신하고자 한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최근 논란이 된 강선우 의원 측에 대한 1억원 공여 사건과 관련해,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했다. 강 의원에게 1억원을 건넨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공천 뇌물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자 구속 등 사법 처리 가능성에 대비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씨는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서구 제1선거구의 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공천받기 위해 강 의원에게 1억원을 준 혐의로 약 한 달간 수사를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김씨 가족 회사들이 김씨가 소속된 시의회 상임위원회 관련 서울시 사업을 경쟁 없이 수의 계약 등으로 잇따라 수주했다는 의혹(본지 1월 19일 자 A5면)이 불거졌다. 관련 사업을 수주한 김씨 가족 회사는 부동산 시행·시공사, 교육 컨설팅 법인 등 7곳으로 수주 금액은 280억원이 넘는다. 서울시는 지난 19일부터 관련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러 민주당 서울 지역 현역 의원에게 금품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은 지난 21일 관련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저장된 서울시의회 PC를 확보하고 양모 전 서울시의회 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해당 녹음 파일엔 김씨가 강서구청장 공천을 받기 위해 공천관리위원 등 여러 지도부 인사에게 공천 헌금을 전달하는 방안을 민주당 관계자와 논의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녹음 파일엔 김씨가 강서구청장 예비 후보 등록 마감을 앞둔 그해 7월쯤 민주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에게 ‘차명 후원’을 논의하고 다음 날 측근 명의로 500만원을 후원 계좌로 입금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등 현역 시의원을 공천 배제하기로 결정된 직후라고 한다. 경찰은 김씨가 민주당 중진 의원에게 한 후원금의 대가성을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경찰의 김씨 수사가 민주당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거론된다. 경찰은 최근 관련 수사팀을 20명 가까이 증원했다.
김씨가 이날 시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경찰의 수사 확대 흐름과 관련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김씨가 향후 있을지 모를 구속 수사를 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도 나온다. 김씨는 관련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달 31일 미국으로 출국해 ‘도피 의혹’이 일자, 경찰과 귀국·출석 일정을 조율하면서 “강 의원에게 직접 1억원을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라고 했었다. 김씨가 이번에도 시의원직 사퇴와 1억원 공여 혐의를 인정함으로써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가능성을 줄여보려는 것 같다는 얘기다.
김씨는 이날 “법적 처벌을 달게 받겠다”면서도 강선우 의원 외 다른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금품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경찰이 이미 물증을 확보해 부인하기 어려운 혐의는 인정하되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선 부인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씨 사퇴 발표는 서울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 결정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27일 소집된 서울시의회 윤리특위 회의에선 최고 징계 수위인 ‘제명’ 결정이 내려질 공산이 크다. 시의원 사직은 회기 중에는 시의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비회기 중에는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금은 비회기 중이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윤리특위의 징계 결정 전에는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