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세관 직원 마약 밀수 연루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합수단)이 9일 관련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합수단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 구성돼 백 경정이 제기했던 세관 직원 마약 밀수 연루 의혹과 윤석열 정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지난 10월엔 이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면서 직접 백 경정을 합수단에 합류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반년 가까운 수사에도 의혹을 입증할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수단은 이에 경찰 간부와 세관 직원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합수단은 이날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에서 “마약 밀수에 세관이 연루됐다는 의혹은 결국 사실무근이었다”고 말했다. 합수단은 또 인천 세관 공무원들이 필로폰 반입을 도왔다고 진술한 말레이시아인 마약 운반책 3명 모두 합수단 조사에서 종전 진술을 뒤집었다(본지 11월 5일 자 A8면)고 밝혔다. 백 경정이 마약 사건을 수사할 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지호 경찰청장(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간부 8명도 무혐의 처분했다.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가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3명에게서 인천공항 세관 공무원들이 마약 밀수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세관 공무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압을 받았고, 이후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합수단은 경찰 수사 초기인 2023년 9월 인천공항 현장 검증 당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한 명이 공범에게 여러 차례 허위 진술을 유도하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백 경정 등이) 밀수범들의 허위 진술을 믿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했다.
◇밀수범 허위 진술만 믿고 수사한 백해룡… ‘외압’ 실체는 없었다
검경 합수단이 9일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세관 공무원 마약 밀수 연루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그동안 백 경정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계속 제기하면서 합수단 수사의 신뢰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 경정은 그간 합수단을 두고 “불법 단체” “수사 의지가 없다”고 공격해 왔다. 최근 들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려고 ‘마약 수입 사업’을 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합수단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의혹 제기 등으로 사건 관계인들의 명예 훼손 등 피해가 상당히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합수단은 ‘결국 사실무근’ ‘밀수범 전원이 실토’ 등의 표현을 쓰면서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과 통화 내역 등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백 경정 주장이 허위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합수단은 경찰이 2023년 9월 인천공항에서 실황 조사를 할 때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A씨가 공범 B씨에게 말레이시아어로 “솔직하게 말하지 마라. 나를 따라서 이쪽으로 나갔다고 해라” “그냥 연기해. 영상 찍으려고 하잖아”라면서 여러 차례 허위 진술을 지시하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경찰이 밀수범들을 분리하지 않은 데다 중국인 통역 한 명만 대동해 (피의자인) A씨에게 (말레이시아어) 통역을 시켰다”고 했다. 당시 수사는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백 경정이 주도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A씨는 또 지난해 3월 B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관(연루 의혹)과 관련해 나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는데 경찰관이 이미 진술한 내용이 있어서 진술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고도 했다. 합수단은 “밀수범들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모순되고 내용이 계속 바뀐다”며 “세관 직원의 도움을 받은 적 없다고 조사 과정에서 실토했다”고 했다.
합수단은 백 경정이 작년 7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경찰 지휘부와 관세청장 등을 고발하면서 불거진 수사 외압 의혹도 무혐의 처분했다. 합수단은 지난 6월 인천세관을 시작으로 반년 동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등 30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의 휴대전화 46대를 포렌식했다. 그러나 경찰·관세청 지휘부가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연락한 내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백 경정은 그간 윤석열 대통령실 지시로 보도자료에서 ‘세관 연루 의혹’ 부분이 삭제된 데다 브리핑도 연기됐다며 ‘외압’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합수단 수사 결과 대통령실에 백 경정이 수사한 말레이시아 마약 밀수 사건이 최초 보고된 시점은 브리핑 당일인 2023년 10월 10일인 것으로 확인됐다. 합수단은 경찰 지휘부가 백 경정에게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해서도 “경찰 공보 규칙에 따라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한 적법한 업무 지시였을 뿐”이라고 했다.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은 2년 넘게 정국을 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윤석열 정부 당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특검, 국정조사까지 촉구하며 의혹을 키웠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작년 8월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별도 청문회도 열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관련 의혹을 주장한 백 경정을 감싸는 발언을 계속해 왔다. 행안위 민주당 간사였던 윤건영 의원은 청문회에서 “경찰청장에게도 보고했고 브리핑까지 다 마쳤던 것(마약 수사)을 갑자기 입장을 바꿔 막는다면, 여기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이러니까 많은 국민이 의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채현일 의원도 “명백한 수사 외압”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백 경정에게 외압을 행사했다고 지목된 조병노 전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 등 경찰 간부 3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도 했다.
올해 들어선 이 대통령까지 나서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을 지시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여권에선 “대통령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의혹을 해소하라는 차원”이라고 했지만, 법조계에선 “국정 최고 책임자가 근거 없는 의혹을 바탕으로 수사에 개입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백 경정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덮어준 합수단도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며 “(임은정 동부지검장은) 마약 게이트를 덮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임 지검장은 이날 소셜미디어 글에서 “(백 경정이) 마약 밀수범들의 거짓말에 속아 세관 직원 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여러모로 피해가 크다”고 했다. 이어 “(과거) 백 경정에게 ‘느낌·추측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충고했었다”며 “백 경정이 실수와 잘못을 더 범하지 않도록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