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된 불법 중계소. /경기남부경찰청

해외 발신 ‘070’ 전화를 국내 ‘010’ 번호로 바꿔 송출하는 불법 중계기를 전국에 설치해 온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중계기 1600여 대를 돌리면서 “한 달에 400만~6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부부·연인·친구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변작된 번호를 이용한 전화금융사기 피해액은 350억원에 달한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국내 관리자 20대 A씨를 포함한 조직원 63명을 검거하고, 이 중 56명을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단속 과정에서 중계기로 쓰인 휴대전화 단말기 1637대, 대포 유심 4299개 등 26억원 상당의 장비를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해외에 체류 중인 총책 B씨의 지시를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서울·경기·인천 등 11개 시·도에서 불법 중계소 51곳을 운영했다. 총책은 중간 관리자에게 장비를 던지기 방식으로 전달했고, 중간 관리자 A씨 등은 20명 안팎의 조직원을 관리하며 중계기 설치·운용 교육을 비대면으로 했다. 실제 운영자들은 원룸 등을 중계소로 꾸미고 1인당 30~40대의 중계기를 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계기들은 해외 사기 콜센터에서 발신한 070 인터넷전화의 발신번호를 010 번호로 변작해 국내 통신망으로 송출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은 중계기에서 주고받는 피싱 관련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범행 인지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판단해 사기 방조 혐의도 적용할 방침이다.

이들이 변작해 송출한 번호로 피해를 본 사람은 총 768명으로 파악됐다. 피해 유형은 투자리딩 사기가 638명으로 가장 많았고, 노쇼 사기 76명, 물품 사기 36명, 보이스피싱 12명, 로맨스 스캠 6명 등이었다. 1인당 피해는 수십만원에서 최대 27억원까지로 총 354억원에 달한다.

검거된 63명 중 부부 3쌍과 처남·매부, 형수·시동생 등 가족 관계가 10명이나 됐다. 나머지 53명도 연인·친구·직장 동료 등 지인 관계가 많았고,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경찰은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 글 등을 통해 이들이 범행에 대거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 7월 마약 투약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중계기를 발견한 뒤 수사를 확대했다. 통신수사와 감시카메라 1000여 곳·계좌 60여 개를 분석해 전국에 흩어진 중계소 51곳을 특정해 일제 단속했다.

경찰은 해외 체류 중인 총책 B씨와 관리책들도 특정한 상태로 국제 공조를 통해 검거를 추진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중계소 운영은 구속 수사로 이어지는 중대 범죄”라며 “고액 보수에 현혹돼 범행에 가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