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청원경찰서./뉴스1

지난 22일 오전 2시 30분쯤,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한 편의점에 비틀거리며 들어선 50대 남성 A씨의 모습은 삶의 벼랑 끝에서 본능적으로 내민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힘없는 손으로 그가 고른 것은 냉동 만두, 피자, 김밥, 치킨, 바나나우유 등 5만원 상당의 먹거리였다.

계산대에 선 그는 같은 또래로 보이는 50대 남성 직원에게 “배가 고프다. 내일 계산하면 안 되겠냐”는 간절한 요청을 건넸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그러자 그는 결심이라도 한 듯 겉옷을 열어 품에 있던 과도를 보여 위협했고, 힘겹게 식료품 봉투를 들고 달아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확인한 방범 카메라에 담긴 그의 모습에서는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그가 잡힌 건 범행 사흘 만인 25일 오전이다. 경찰은 인근 원룸에서 A(59)씨를 긴급 체포했다.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있던 그는 경찰이 일으켜 세우려 할 때마다 힘없이 주저앉았다.

흉기를 든 강도를 잡으러 나선 경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일 넘게 음식 해 먹은 흔적 없는 식기류, 그리고 텅 빈 냉장고였다.

그는 경찰에 “열흘 가까이 굶어 배가 고팠다. 사람을 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렇게 몇 차례 만에 겨우 그를 경찰서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서로 압송된 A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는 심하게 야위었고,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형사들은 당장 범죄 수사보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이규성 형사과장은 “조사보다도 사람 먼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반 밥마저 탈이 날까 봐 죽을 먼저 사서 먹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죽을 먹은 A씨는 조금 기력을 회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사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찰은 그를 데리고 병원까지 갔다. 4만2000원의 사비를 들여 영양 수액을 맞혔다.

경찰이 A씨를 가족에게 인계하기 위해 수소문했다. 가정을 꾸리지 못한 A씨에게는 노모와 형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A씨도 형편이 어려운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절벽 끝에 홀로 선 그는 당장 거처로 돌아가도 다시 굶주릴 처지였다. 경찰은 마트에서 계란, 햇반, 라면 등 기본적인 식자재까지 구매해 그의 손에 들려 보냈다.

A씨는 경찰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놨다. 당뇨 등의 지병을 앓던 그는 몸이 안 좋아져 지난 7월 이후 일용직 노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지독한 생활고에 병원도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빌린 대출금은 연체되어 통장마저 압류됐다고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기초생활수급이나 민생회복지원금 등 각종 복지 제도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지 못해 제도를 이용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 안전망의 가장자리, 복지 사각지대에서 극심한 기아를 견디다 결국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흉기를 동원한 범행과 도주 사실을 고려해 준강도 혐의로 당초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전과가 없고 극심한 생활고로 인한 범행이라는 점을 참작해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경찰은 오늘 A씨와 함께 오창읍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천안에 주소를 둔 그의 주소를 현 거주지로 옮기고, 기초생활수급 제도를 신청했다. 대상자 선정 심사를 받는 3개월 동안 매달 76만원의 임시 생계비를 지원받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청주시는 A씨의 구직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과도 없고 극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는 등 벼랑 끝까지 몰리자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 같다”며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그를 준강도 혐의로 불구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