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룡 경정이 주장한 ‘마약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인천 세관 직원들이 필로폰 반입을 도왔다”고 진술한 말레이시아 운반책 중 한 명이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 운반책은 백 경정이 주도한 인천공항 현장 검증 도중에도 정신 분열 증세를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 경정은 그간 “(운반책들 증언이) 구체적이고 확실하다”고 해왔다. 그러나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을 제기했던 운반책 중 일부가 최근 “세관 직원들이 마약 반입을 도운 적 없다”며 진술을 바꾼 데 이어 핵심 증인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검경 합동 수사단은 이 진술들의 신빙성을 다시 따져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던 지난 2023년 9월 한국을 수차례 드나들며 필로폰을 밀수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들을 검거해 그해 1월 27일 인천공항으로 필로폰을 반입할 때 인천 세관 공무원이 도와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2월 27일 김해공항을 통해 마약을 반입하다 검찰에 검거된 말레이시아인 A(48)씨는 백 경정 팀에 이런 진술을 한 3명 중 한 명이다. 9월 백 경정 수사팀에 붙잡힌 다른 운반책 2명이 “1월 27일 입국할 때 인천 세관 직원들이 밀반입을 도와줬다”고 진술했고, 이후 백 경정 팀은 A씨를 추가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같은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백 경정은 A씨 등 운반책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다섯 차례 현장 검증에 나섰다. 2023년 11월 10일과 13일 백 경정 수사팀이 인천공항 현장 검증을 한 뒤 작성한 조서를 보면, A씨는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이) 세관에서 사람을 다 사 놨기(매수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며 “(조직이) 단체 채팅방에서 (마약 밀반입을 도와줄 한국 세관 직원들)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A씨는 통역을 통해 “내가 정신분열증이 있는데 지금 도진 것 같다”고 하더니, “계속 (환청이) 지금 귀에서 들리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금 적게 좀 물어봤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후 A씨가 “수갑을 잠시 풀어 달라”고 해 백 경정이 수갑을 풀어주기도 했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이후에도 경찰의 신문은 이어졌다. 백 경정은 “(세관 직원 사진이 올라온) 단체방에 몇 명이 참여했느냐”고 했고 A씨는 “5명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운반책은 “13명이 참여했다”고 했다. 이에 백 경정이 “13명? 맞는 것 같아요?”라고 묻자, A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13명이) 맞다”라며 말을 바꿨다.
A씨는 이 외에도 여러 차례 다른 운반책 진술을 듣고 나서 이들의 진술 취지와 비슷하게 진술했다. 마약 조직이 마련해 준 기내용 캐리어가 7㎏이라는 다른 운반책 진술에 A씨는 “똑같다”고 했고, 한국에서 쓸 여비로 1인당 50만원을 받았다는 다른 운반책 진술에도 “똑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백 경정이 A씨에게 “(다른 사람 진술과) ‘똑같다’고만 얘기하지 말고 (구체적인) 진술을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A씨는 현장 검증에서 문제의 1월 27일 마약 반입을 도왔다며 인천공항 세관 근무자 3명을 지목했다. A씨는 이 가운데 1명에 대해 “(나를) 2층에서부터 안내한 사람이다. 기억에 분명히 박혀 있다”고 했다. 반면 다른 한 운반책은 세관 직원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관세청 확인 결과, A씨가 지목한 직원은 당일 연가를 냈고 공항에 출근한 기록도 없었다. A씨는 또 1월 27일 입국 과정에서 4번 또는 5번 세관 검색대를 통과했다고 했다. 그러나 당일 인천공항에선 4·5번 검색대가 운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법 전공인 이종수 서강대 교수는 “조사 당시 정신 질환 증상을 호소하고 다른 사람 진술을 줄곧 따라 했다면 그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정신 질환은) 진술의 신빙성 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전문의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