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룡 경정이 주장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필로폰을 밀수했다가 백 경정팀 등에 검거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중 일부가 최근 “세관 직원들이 마약 반입을 도운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해 검찰이 진위를 수사 중인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지난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가 말레이시아 운반책들에게서 인천 세관 공무원이 마약 반입에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려다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 구성된 검경 합동 수사단 조사에서 일부 운반책이 종전 진술을 바꿨다는 것이다. 백 경정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검찰, 경찰 등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한 상태다. 최근 들어선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 수입 사업’을 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는 “백 경정이 제기하는 의혹들은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서 시작됐다”며 “마약 운반책의 진술 일부가 흔들릴 경우 사건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①마약 운반책 진술 믿을 수 있나
말레이시아 국적의 마약 조직 운반책 5명은 지난 2023년 2월부터 9월까지 한국 검찰과 경찰에 차례로 검거됐다. 5명 중 2명은 백 경정이 이끄는 영등포서 형사과가 그해 9월 9일 체포했다. 나머지 3명은 이보다 앞서 그해 2월 검찰이 붙잡았다. 현재 5명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백 경정 팀에 붙잡힌 2명은 경찰 조사에서 “2023년 1월 27일 팔·다리·복부에 필로폰을 숨겨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세관 직원들이 입국·통관을 도왔다”고 진술했다. 이 2명은 백 경정 팀에 검거된 9월 전에도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며 필로폰을 반입해 왔다. 그런데 그해 1월 입국할 때 인천 세관 직원들이 밀반입을 도와줬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이 2명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던 다른 운반책 1명은 이들보다 앞선 지난 2월 검찰에 검거됐는데, 백 경정 팀은 이 운반책을 통해서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운반책들은 2023년 1월 27일 인천공항으로 마약을 밀반입할 때 세관원 제복을 입은 두 남자 중 한 명이 손을 흔든 뒤 먼저 “말레이시아에서 왔느냐”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자기들이 타고 온 비행기는 농축산물 검역본부의 일제 검역 대상이었지만, 세관 직원들이 빼줬다고도 했다. 한 운반책이 실수로 7㎏ 정도 나가는 캐리어를 검색대에 올려놨고 ‘삑’ 소리가 났지만 세관 직원이 가라는 손짓도 했다고 진술했다.
관세청이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백 경정 수사팀은 세관 현장 검증에 나서 문제의 1월 27일 인천공항 세관 근무자들 중 4명을 순서대로 방에 들여보낸 뒤 운반책 2명에게 이들 중 도움을 줬다는 직원을 지목하게 했다. 운반책 2명은 세관 직원 4명 중 3명을 지목했다. 그런데 이 3명 중 1명은 1월 27일에 연가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직원은 그날 집에서 딸과 촬영한 동영상, 공항에 가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공항 출입 기록 등을 경찰에 제출했다.
운반책들은 백 경정 팀 조사 때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세관 직원들이 당시 공항 건물 밖에 다녀온 출입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운반책들은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고도 진술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그린 라인은 운반책들이 입국 시 세관 직원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한 2023년 1월엔 없었고 그로부터 4개월 후인 그해 5월에야 설치됐다”고 했다.
관세청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는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동부지검 합동 수사단에 파견된 한 경찰관이 지난 7월 “(세관 직원이 연루됐다는) 운반책들 진술이 전부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글을 경찰 내부망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찰관은 백 경정이 영등포에서 관련 수사를 할 때 팀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것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②수사 방해·외압 있었나
백 경정은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가 세관 연루 혐의 수사를 막으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3년 9월 검거한 운반책에게서 인천 세관 직원이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직후, 직속 상관인 김찬수(현 경무관) 당시 영등포서장이 “용산(대통령실)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언론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간부들은 보도 자료에서 ‘세관 연루 의혹’ 부분을 삭제하라고도 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간부들은 “보도 자료에서 세관 내용을 빼라고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밀수범들의 일방적 진술 이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공보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찬수 전 서장은 “용산이나 대통령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백 경정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 수색 영장을 검찰이 반복적으로 반려하면서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계좌 영장 등 40건 이상의 영장 신청 중 대부분을 청구했다. 오류가 있는 사항에 대해 보완 요구를 한 것”이라고 했다.
③윤 전 대통령 부부 마약 사업 관여했나
백 경정은 올해 들어 유튜브·언론 인터뷰 등에서 “윤 대통령 부부가 내란 수행에 필요한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약 독점 사업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접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의혹의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질문에 “모든 것은 내 추정이며, 나를 수사하게 내버려 뒀으면 이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완전한 허위 의혹 제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