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대통령 지시로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 수사팀에 합류한 백해룡 경정과 이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임은정 동부지검장이 연일 충돌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임 지검장에게 “백 경정 파견으로 수사팀을 보강해 엄정 수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백 경정은 공개적으로 “합동 수사팀은 불법 단체” “수사 의지가 없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임 지검장도 “합동 수사팀원들이 대견하다 못해 존경스럽다”고 맞받아쳤다. 임 검사장과 백 경정의 갈등이 깊어지자 “수사가 산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임 지검장과 백 경정은 모두 검찰·경찰 조직 수뇌부 등 ‘주류’를 비판하고 이들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언론 매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침없는 언사를 쏟아내 “검경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라고도 불렸다. 현 여권 강성 지지층(‘개딸’) 사이에서 “두 사람은 차기 검찰총장·경찰청장감”이란 말도 나왔다.
임 지검장은 2012년 12월 반공법 위반 재심 사건에서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넘기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법정 문을 걸어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 임 지검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한직을 전전하다가 이재명 정부 첫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차장검사를 거치지 않고 검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던 2023년 말레이시아인 필로폰 밀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권과 경찰 수뇌부 등의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인천세관 직원들이 조직원 입국을 도왔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려 하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검찰·경찰·국정원 등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 본격화한 작년 말부터 가까워졌다고 한다. 작년 12월 한 시민단체가 백 경정에게 상을 주는 행사에 임 지검장이 “나도 과거에 이 상을 받았다”며 참석했다. 임 지검장은 지난 7월 동부지검에 부임한 뒤 백 경정을 검찰청사로 초대해 합수단과의 면담도 주선했다. 서로 “내부 고발자들의 애환과 의심을 잘 알고 있다” “눈빛만 봐도 위로가 된다”고 했었다.
검찰과 경찰에선 “둘은 명확한 근거를 공개하지 않고 먼저 의혹부터 제기하는 모습이 닮았다”는 평도 나온다. 임 지검장은 2019년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검찰 간부 4명이 부산지검 윤모 검사의 이른바 ‘고소장 바꿔치기’ 사건을 제대로 감찰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하는 식으로 무마했다며 고발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 등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백 경정도 합동 수사팀을 ‘불법 단체’라고 연일 공격하면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둘의 관계가 틀어진 건 공교롭게도 백 경정의 합동 수사팀 합류가 결정되면서다. 파견 명령을 받은 백 경정은 합동 수사팀을 “불법 단체”라고 규정하고 해체를 요구했다. 이에 동부지검은 합동 수사팀을 해체할 수 없다면서,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하는 5인 규모의 별도 수사팀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백 경정은 본지에 “경찰 형사과장 시절 팀이 10개에 부하 직원은 60여 명이었다. 일선 경찰서 고참 경정에게 5명으로 팀을 구성하라니 이해가 안 된다”며 “나를 계속 ‘먹이는’ 건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백 경정과 임 지검장은 백 경정의 수사 범위를 두고도 대립하고 있다. 백 경정은 본인이 고발인인 수사 외압 의혹도 자기가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부지검은 인천지검의 말레이시아 조직원 마약 밀수 사건 은폐 의혹 등에 대해서만 수사하라고 했다. 임 지검장은 백 경정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고발까지 한 만큼 이 문제 수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셀프 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사정에 밝은 법조계 인사는 “백 경정은 이 기회에 검찰과 대등하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유튜브에서 무리한 발언을 이어가는 것 같고, 임 지검장은 그건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검사장이 된 임 지검장이 전과 달리 검찰 내부 여론을 일정 정도 의식하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검경 조직 수뇌부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 여권 지지층의 박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있게 되면서 “존재감 경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비슷한 캐릭터로 평가받았던 두 사람이 이번에 검사와 경찰 본연의 역량 평가를 받게 될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말만 앞선 무능력자’란 딱지가 붙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좌파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임은정도 검사라 못 믿겠다” “백해룡은 말만 너무 앞선다”는 상반된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