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지난 8월 귀국한 김모(37)씨는 인천의 한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캄보디아에 있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에 계좌를 빌려줘 자금 세탁을 돕던 그를 은행원이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 계좌는 지난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79차례에 걸쳐 9억6000만원이 입금됐고, 147회에 걸쳐 8억7000만원이 출금됐다. 신용 불량자인 김씨는 “통장을 빌려주면 거래액의 2~3%를 수수료로 주겠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캄보디아에 갔다”며 “지급 정지된 계좌를 풀면 수수료를 준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귀국했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있는 중국 범죄 조직들이 한국인 20·30대를 유인하는 건 범죄 수익금을 세탁하기 위한 대포 통장(차명 계좌)을 구하기 위해서다. 국내 가상 자산 거래소와 연동된 은행 계좌는 통상 1000만~2000만원에 거래된다. ‘장책’이라 불리는 통장 모집책은 온라인 광고를 통해 계좌 대여자에게 세탁 자금의 1~3%를 수수료로 떼어 주겠다며 돈이 급한 청춘을 꼬드긴다. 그렇게 찾아온 이들을 세탁 자금 인출을 막기 위해 볼모로 붙잡고, 각종 사기 범죄에 가담시킨다.
캄보디아 정부는 15일 “현지 단속으로 구금된 한국인들이 한국 외교부 도움마저 거부하며 귀국을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상당수가 범죄인 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현지 조직에 가담해 한국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는 취지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공생 관계’이기도 한 통장 판매자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려고 범죄 가담을 부인하라는 ‘진술 대본’을 짜주기도 한다.
한편 한국 경찰은 캄보디아 이민청에 구금 중인 한국인 63명 중 2명을 14일 국내로 송환했고 나머지도 송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캄보디아 경찰의 범죄 단지 단속을 통해 적발됐다. 외교부는 범죄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 대해 여행 경보를 상향 조절했다. 이에 따라 16일 자정부터는 캄포트주 보코산과 포이펫시는 4단계 ‘여행 금지’로, 남서부 항구 도시 시아누크빌은 3단계 ‘출국 권고’로 각각 상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