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총기 사고가 발생한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단지./뉴스1

“아들과 전처가 짜고 나를 셋업했다(함정에 빠트렸다).”

‘인천 사제 총기 살인 사건’으로 구속된 조모(62)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같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런 진술 등을 토대로 조씨가 가족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다는 고립감과 자신을 따돌린다는 망상 속에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조씨는 초기 경찰 조사에선 가정 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을 범행 동기로 진술했으나 이를 인정할 만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29일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살인,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현주건조물방화예비 혐의 등으로 구속된 조씨는 아들과 이혼한 아내가 자신을 따돌리고 소외시켰다는 망상 속에서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씨는 지난 2015년 아들 A(34·사망)씨가 결혼하기 전까지 1999년 이혼한 아내 등과 함께 서울 도봉구 집에서 살았다. 특별한 직업은 없었다고 한다. 조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이혼했음에도 여전히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아들 A씨가 결혼을 하면서 분가하고, 이혼한 아내까지 다른 집에 살게 되면서 조씨는 서울 도봉구 집에 혼자 남게 됐다. 경찰은 이때부터 조씨가 아들과 이혼한 아내에 대한 불만과 망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는 혼자 살게 된 이후에도 아들과 이혼한 아내 등으로부터 생활비와 대학원 등록금, 통신비, 생일 축하금, 아파트 공과금 등 경제적 지원을 지속해서 받아왔고, 명절과 어버이날, 자신의 생일 등에도 교류하는 등 특별한 가정 불화나 갈등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프로파일러 조사에서 밝혔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조씨는 직접적인 범행 동기는 아니라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조씨) 스스로 자신이 외톨이라는 고립감에 사로잡혔고, 가장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한 채 심리적으로 위축돼 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 측은 피의자를 같은 가족으로 생각하고 잘해줬으나, 피의자는 (범행의) 모든 책임을 가족들에게 전가했다”고 했다. 이어 “(수사 결과) 다른 가족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피의자의 누적된 착각과 망상이 범행 동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지난해 8월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이때부터 사제 총기 제작 관련 영상 등을 보면서 온라인을 통해 총기 제작에 필요한 파이프와 손잡이 등을 구입했고, 최근엔 주거지에 불을 지를 목적으로 타이머 콘센트와 전선, 시너 등 폭발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들였다.

조씨는 직접 만든 총기를 자신의 집에서 장약을 뺀 채로 격발이 되는지 등을 시험해 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방화를 위해 폭발물을 제조해 불을 붙여보는 실험을 하는 등 범죄를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준비가 마무리되자 조씨는 범행을 결심하고 지난 20일 아들 A씨의 집이 있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로 향했다. 자신의 생일 잔치가 준비된 날이었다. 경찰은 자신의 생일 잔치를 아들 집에 가기 위한 명분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씨는 평소 A씨 집에 갈 때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은 차를 빌렸고, 그 차 안에 직접 만든 총기와 총알 등을 실었다.

오후 7시 6분쯤 도착한 조씨는 아들 A씨와 며느리, 손주 2명, 외국인 가정교사(며느리 지인) 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 53분쯤 편의점을 다녀온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총기를 가져온 그는 오후 9시 23분쯤 현관문을 열어주던 A씨의 가슴과 복부를 향해 두 차례 총을 쐈다. 며느리와 손주들은 방으로 도망쳤고, “너희들 다 이리 와라. 조용히 해라”라며 쫓았다. 다른 방에서 영상 통화를 하던 외국인 가정교사는 총소리에 집 밖으로 도망쳤다.

조씨는 도망치는 가정교사에게 한 차례 총을 발사했으나 현관문 도어락에 맞았다. 조씨는 현관문 밖 비상구 복도까지 쫓으며 한 차례 더 격발했지만 불발됐고, 가정교사가 떨어트린 휴대전화를 주웠다. 이 과정에서 가정교사 모친이 조씨의 얼굴을 본 것으로 파악됐다.

조씨는 A씨 집으로 돌아가 총알을 재장전하고 며느리 등이 숨은 방 앞에서 대치하다가 방안에서 신고하는 소리를 듣고 현장을 떠났다.

조씨는 현관문을 나와 비상계단으로 아파트 16층까지 걸어서 내려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27층에 있는 재활용 수거함에 가정교사의 휴대전화를 버렸다. 조씨는 1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오후 9시 42분쯤 아파트 외부로 빠져나갔다.

조씨에게 총을 맞은 A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21일 오전 0시 19분쯤 서울에서 붙잡았고, 그의 서울 집에선 타이머가 다음 날 정오로 맞춰진 사제 폭발물이 발견돼 해체 작업이 진행됐다.

경찰은 조씨가 범행 당시 A씨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며느리와 손주 2명, 외국인 가정교사(며느리의 지인) 등 다른 4명도 모두 살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피의자(조씨)는 총열 4개와 총알 15발을 가지고 들어갔고 도망간 며느리 지인을 추적하면서 총을 쏘려고 했다”며 “집 안에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총을 겨누면서 ‘이리 와’라고 말했던 것으로 봤을 때 신고를 못하게 할 목적으로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조씨가 자신의 서울 집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한 것과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폭발물 위력 분석을 의뢰하고, 결과에 따라 현주건조물방화예비 혐의를 폭발물사용죄로 변경할 방침이다.

경찰은 30일 조씨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찰특공대는 오후 9시 31분 첫 신고 접수 이후 70여 분 만에 사건 현장에 진입했고, 가장 위험한 단계에 내려지는 ‘코드0’가 발령돼 즉시 현장에 갔어야 하는 상황관리관은 경찰서에 있다가 인천경찰청 지시로 사건 발생 1시간여 만인 오후 10시 33분 출동했다. 사건을 보고받은 관할 경찰서장은 현장이 아닌 경찰서에서 상황을 지휘했다. 조씨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 신고 접수 98분 만인 오후 11시 9분쯤에야 시작하는 등 초동 수사 부실 논란을 빚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자(A씨의 아내)와 통화하고 문자를 지속해서 주고받았는데, (조씨가) 밖에서 총을 장전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특공대 진입 작전 등을 수립했다”고 했다. 이어 “피의자(조씨)가 현장에 없다는 사실을 특공대 진입 후 확인했고, 피해자 측과 접촉한 뒤 (조씨가) 자살 우려가 있다고 해서 신속하게 휴대전화 위치 조회를 요청했다”고 했다.

초동 수사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선 “현재 경찰청의 감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섣불리 언급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