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만 2세 여아 보람이의 친모로 나타난 석모(50)씨가 1심 선고를 앞둔 지난 2021년 8월 17일 오후 대구지법 김천지원에 도착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21년 2월 경북 구미 한 빌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만 2세 여아 ‘보람양 사건’과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부에서 보람양의 친모 석모(50)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석씨는 보람양 시신을 숨기려다 미수에 그치고, 자신의 딸인 김모(24)씨가 낳은 딸(외손녀)과 보람양을 바꿔치기한 혐의로 1·2심 재판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시신을 숨기려한 점은 인정되나 유아 바꿔치기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2일 대구지법 형사항소 1부(재판장 이상균)는 미성년자 약취·사체은닉 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석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석씨는 2018년 3월쯤 구미의 한 산부인과에서 내연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보람양과, 자신의 딸 김씨가 낳은 외손녀를 바꿔치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보람양을 친딸인 줄 알고 키웠지만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임신한 자녀 출산이 다가오자 보람양을 빌라에 방치해 숨지게 했다. 이후 석씨는 2021년 2월 9일 딸의 빌라에서 발견한 보람양의 시신을 숨기려다 미수에 그쳤다.

석씨는 당시 경찰에게 자신이 보람양의 외할머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에 이르기까지 총 6차례 실시한 DNA 검사 결과 모두 보람양 친모로 밝혀졌다.

앞서 석씨는 1·2심 재판에서 혐의가 모두 인정돼 각각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작년 6월 대법원이 “석씨가 보람양의 친모임은 인정되나, 유아 바꿔치기를 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대구지법 재판부는 석씨의 사체은닉 미수 혐의는 인정한 반면,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미성년자 약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대로 판결한 것이다.

과거 1·2심 재판부에선 석씨가 임신 추정 기간에 생리대 구입을 중단한 점, 몸매 보정 속옷을 구매한 점, 유아 바꿔치기가 의심되는 시기에 아기 몸무게가 줄어든 점 등을 증거로 미성년자 약취 혐의를 인정했다. 출산 직후 아기의 발목에 채우는 식별띠가 훼손된 점, 석씨가 휴대폰으로 출산 관련 동영상을 보고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 기록도 증거로 인정됐다.

반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증거들을 모두 배척했다. 재판부는 “보정 속옷을 다이어트용으로 구매했다는 석씨 주장을 배제하기 어렵고, 출산 관련 동영상 시청 등도 석씨가 유아를 바꿔치기했다는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산 직후 아기 몸무게가 급격히 변화할 수 있다는 점, 식별띠가 훼손되는 사례도 간혹 발생한다는 간호사들 증언도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 구조상 신생아실에 외부인이 출입하기 어렵다는 점, 석씨가 아기를 바꿔치기 할 명확한 동기가 없다는 점도 재판부가 미성년자 약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외도로 낳은 아이를 가까이 두기 위해 바꿔치기했다고 보기엔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될 때까지 방치한 석씨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체은닉 미수의 경우 석씨가 인정하는 반면, 미성년자 약취 혐의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만큼 무죄로 선고한다”면서도 “석씨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석씨는 취재진에게 “먹고, 하고, 가고 싶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 “절에 가서 기도하고 싶고, (수감된)딸을 찾아가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석씨의 딸 김씨가 2018년 3월 출산했다는 유아의 행방 및 생존 여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2021년 살인 등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