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경기 이천시 관고동의 한 건물 4층 병원에서 소방대원들이 환자 등을 구조하고 있다. 이날 3층에서 시작된 불은 4층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대거 발생한 연기가 4층에 있던 환자들 쪽으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5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커졌다. /연합뉴스

5일 경기 이천시의 4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나 이 건물 4층에 입주해 있던 신장 투석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또 병원 환자 등 44명이 연기에 질식하는 등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화재 자체는 이 건물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시작돼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고 1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하지만 스크린골프장 바로 위층 병원에 당시 투석 중이던 환자가 많아 인명 피해가 컸다.

이날 오전 10시 17분쯤 이천시 관고동 도심에 있는 학산빌딩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불이 났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이 건물은 지어진 지 약 18년 된 것으로 1층에는 음식점과 사무실·한의원, 2·3층에는 한의원과 사무실·스크린골프장·당구장, 4층에는 투석 전문 병원이 입주해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펌프차 등 장비 40대와 소방관 등 110명을 동원해 1시간 만인 11시 29분쯤 불을 모두 껐다. 하지만 건물을 수색 중 4층 병원 병실 부근에서 60~80대 환자 4명과 50대 여성 간호사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날 70명 규모의 수사 전담팀을 편성해 화재 원인과 이 건물에 관한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져 왔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소방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불이 시작된 3층 스크린골프장은 최근 한 달쯤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고 이날 내부 시설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작업자 중 한 사람이 천장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119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불길이 3층 전체로 번지면서 발생한 연기가 건물 내부 환기구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4층 병원으로 대거 유입된 것으로 소방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당시 4층 병원에는 환자 33명, 의료진 13명 등 모두 46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내부는 계단·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왼쪽은 원장실이, 오른쪽은 병상이 모여 있는 구조였다. 칸막이가 하나도 없어 병원 전체가 트여 있는 형태라고 한다. 특히 병상 바로 아래가 불이 난 스크린골프장이라, 환자들이 짧은 시간에 연기에 대거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화재 발생 직후 건물 내 비상벨이 울렸는데, 병원 관계자는 “벨이 울린 후 불과 1분 만에 연기가 차올라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병상 반대편 원장실 근처로 환자들을 모으려 했지만 투석 기계 때문에 짧은 시간에 모두 대피시키기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투석은 환자의 혈액을 투석기에 통과시켜 노폐물을 걸러내고 몸에 다시 주입하는 것이다. 투석기가 보통 50kg에 달해 옮기기 힘든 데다 투석 중에는 환자가 팔 등에 연결된 관을 혼자 제거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이날도 간호사들이 일일이 투석기와 환자들 몸을 잇는 관을 가위나 칼 등으로 자르고 붕대로 감는 임시 조치를 한 후 대피했다고 한다. 이 병원 환자 A(67)씨도 “투석을 받고 있는데 시꺼먼 연기가 아래에서 올라오더니 금세 병원 안에 들어찼다”면서 “간호사들에게 투석하던 관을 어서 잘라 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투석기를 떼낸 후 1층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숨진 환자들은 모두 혼자 거동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 중 한 사람인 김모(64)씨의 경우 10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아 두 다리 모두 무릎 아래를 절단한 상태였다. 그의 형은 “의족을 하고 목발을 짚고 3년 전부터 매주 세 차례 병원에 투석을 하러 다녔다”고 했다. 다른 사망자 3명도 70대 여성, 80대 남성 2명 등 고령자였다. 또 사망한 여성 간호사는 환자들로부터 투석기를 제거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느라 제때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소방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