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어린이 스포츠센터 대표 한모(41)씨가 새벽에 피해자를 폭행한 뒤 경찰에 허위로 1차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범행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새벽 2시쯤 “누나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한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 등을 의심하고 한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만취한 한씨는 “누나가 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 어떤 남자가 들어와 싸우다 도망갔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경찰의 CC(폐쇄회로)TV 확인 요청을 거부하고 “나중에 경찰서에 가서 고소하겠다”고 했다.
센터 내부를 확인한 경찰은 하의가 완전히 벗겨진 상태로 바닥에 누워있는 피해자 A씨를 발견했다. 한씨와 직원인 A씨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A씨가 누구인지 묻자, 한씨는 “직원인데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것”이라며 “도망간 남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
경찰관은 패딩으로 A씨의 하의를 덮어줬고, A씨를 깨우려 시도했다고 한다. A씨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찰은 한씨 말대로 A씨에게 술 냄새가 나는 상태라 만취한 것으로 보고 철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A씨에 대한 폭행은 경찰 1차 출동 전에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긴 플라스틱 막대가 피해자의 장기를 건드려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국과수의 1차 소견이 나왔는데, 한씨가 피해자의 항문 부위에 70cm 길이의 막대를 찔러 넣은 것도 1차 출동 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이 폭행으로 생긴 A씨 엉덩이의 멍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센터에 혈흔 등 범죄 정황이 보이지 않아 범죄 현장으로 볼 근거가 (당시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7시간이 지난 31일 아침 9시쯤, 한씨는 “일어나보니 직원인 A씨가 의식이 없다”며 119에 다시 신고했다 . 이때 출동한 경찰은 몸에 멍이 든 채 숨진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한씨가 A씨를 폭행하다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막대가 장기를 건드려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국과수의 1차 소견 이후 ‘살인의 고의’도 있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한씨는 지난 2일 구속됐다.
경찰의 초동 출동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현장 출동 경찰관의 입장에서 살인 범죄를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며 “미비점을 확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