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터에서 17일 오전 발생한 화재가 40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소방 당국이 진화(鎭火)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 물류센터 내부 곳곳에서 의류·화장품·전자제품, 배송용 박스·비닐 등이 불타오르며 소방관들이 진입조차 하지 못할 만큼 뜨거운 열기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건물 중앙부가 주저앉았고, 외벽 소재인 패널도 떨어져 나가 건물 뼈대가 드러났다. 현장 소방 관계자는 “내부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열기와 바로 10㎝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다”며 “완진(完鎭)은 일주일쯤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상 진압보다는 자연 소각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소방관들은 화재 건물 바깥에서 열기를 식히기 위한 물대포를 쏘고 있다. 소방 당국은 17일 오전 5시 20분쯤 지하 2층 물품 창고의 진열대 선반 근처 콘센트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을 확인했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분석 중이다.
불이 난 덕평물류센터는 쿠팡이 전국에 보유한 170여 배송·물류센터 가운데 인천·고양과 함께 ‘빅3’로 꼽히는 대형 물류 기지다. 지상 4층, 지하 2층에 축구장 15개 넓이(연면적 12만7179㎡)다. 물류센터는 상품을 보관하는 창고 개념으로, 주문 다음 날 신속 배송하는 서비스인 ‘로켓배송’ 물품들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화재가 크게 번진 것은 물류센터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우선 창고를 가득 채운 상품과 포장용 박스·비닐 등 가연성(可燃性) 소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로켓배송’은 고객의 주문을 사전 예측해, 물류센터에 미리 상품을 쌓아두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지역 거점으로 보내 배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특성상 아직 주문이 안 들어온 상품들까지 대거 입고돼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로 선반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위의 제품들도 함께 쏟아져 내렸고 이로 인해 불길이 계속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쿠팡 노조는 18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물류센터에는 수많은 전기 장치가 설치된 데다 먼지까지 쌓여 화재 위험이 높다”고 했다.
덕평물류센터의 층고(層高)는 10m였다. 물건을 창고형 할인매장처럼 선반에 층층이 쌓아 보관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상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천장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해도 층고가 높으면 윗부분만 젖고 선반 아래 부분은 계속 불 타고 있어 화재 진압이 어렵다”고 했다. 또 바닥 쪽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그 열기가 천장까지 닿기 어려워 작동 시간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소방 관계자는 “선발대가 도착했을 때 현장 스프링클러는 작동 중이었다”며 “보통 수신기 오작동 문제로, 일시 정지 시켜놓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곳도 그런 의혹이 있는지 화재 진압 후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방화벽을 설치하기 어려운 물류센터의 미로(迷路) 같은 구조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창고는 컨베이어 벨트나 짐 옮기는 장비들이 있어 방화벽 설치가 어렵고, 화재 발생 시 넓은 공간으로 즉시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구조가 진화 작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소방 관계자는 “내부에 공산품이 즐비한 데다, 적재물 하나만 통로에 있어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난항을 겪는다”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생필품, 신선식품 등 모든 제품을 ‘택배 주문’하는 게 표준이 되면서 전국 각지에는 이 같은 물류센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물류센터의 구조가 대부분 비슷해, 이런 대형 참사가 언제든 재발할 위험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8일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경기 1534곳, 경남 586곳, 부산 403곳 등 총 4624곳의 물류창고(센터)가 있다. 작년에만 732곳이 늘었다. 백민호 강원대 교수(재난관리공학 전공)는 “가연물이 많고 구조가 복잡한 물류센터의 특수성에 맞는 안전 점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천=김동현 기자, 김윤주·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