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합니다. 판사님!”

지난달 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110호 법정.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재판부 1심 선고가 나오자, 방청석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고인 김모(34)씨 손에 두 딸이 무참히 살해된 유족의 절규였다. 두 딸 아버지(61)는 “시신에 구더기가 생겨 얼굴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뒤늦게 발견됐다”면서 “저놈은 악마다. 사형을 내려야 한다”고 외쳤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김석모 기자

◇술 취해 잠든 여자친구 목 졸라 살해, 범행 숨기려 언니까지 죽여

지난해 6월 25일 오후 10시30분, 충남 당진시 한 아파트 7XX호. 김씨가 술에 취해 잠든 여자친구 A(당시 39세)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2시간 전쯤 함께 술을 마실 때 동생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던 자신을 나무라서 화가 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A씨가 이전에도 술기운에 종일 구토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인 것에 불만이 컸다는 것이다.

김씨는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움을 느꼈다. A씨 언니 B씨(당시 40세)가 같은 아파트 12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피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김씨는 계단으로 12층까지 올라갔다. 승강기에 설치된 CCTV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방범창을 뜯고 B씨 집에 침입한 김씨는 2시간가량 기다렸다. 퇴근하고 집에 온 B씨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휴대전화와 체크카드 비밀번호까지 물어 확인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김씨는 B씨 금목걸이와 금팔찌 등 귀금속, 휴대전화, 지갑과 명품 가방, 승용차 열쇠까지 챙긴 뒤 범행 현장을 빠져나와 도주했다.

살인 일러스트.

◇피해자 체크카드 돈으로 도피 중 유흥 즐겨, 전 여자친구에겐 훔친 물건 선물

B씨 벤츠 차량을 훔쳐 탄 김씨는 과거 일했던 울산 등을 돌아다니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도 했다. 숨진 A씨와 B씨 자매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고, 이들의 친구들에게 본인인 척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민속주점을 운영하던 B씨가 갑자기 가게 문을 열지 않자 안부를 묻는 B씨 친구들에게는 ‘집안일이 복잡하다’ ‘조만간 올라가서 얘기해 줄게’ ‘해결하는 대로 연락할게’ 같은 문자 메시지 답장을 보냈다.

자매들이 숨진 사실이 드러나기 전, 김씨는 B씨 체크카드에서 찾은 현금 559만원으로 유흥 생활을 즐겼다. 훔친 B씨 명품 지갑과 가방을 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게임을 즐긴 정황도 확인됐다. 6월30일과 7월1일 사이 자매 휴대전화로 FIFA 온라인 게임에서 106만7000원어치 소액결제가 이뤄졌다.

자매들 시신은 사건 엿새가 지난 7월 1일 발견됐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B씨 지인이 신고했고, 경찰이 집을 찾아가 참극의 현장을 발견했다. 당시 무더운 날씨에 자매들 시신은 부패 상태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1부(김수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20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피해자 부모는 두 딸을 동시에 잃게 됐다”며 “피고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 속죄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또 “피고인은 도피 생활을 하면서 B씨 체크카드에서 찾은 현금 대부분을 유흥자금으로 탕진했다”며 “자신의 범행에 대해 속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가 먹여 살릴게”, 살갑던 두 딸 잃은 부모는 통곡

하룻밤 새 두 딸을 잃은 부모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숨진 자매의 아버지 C씨는 “친구같이 아버지를 챙겨주던 두 딸이 한순간에 세상을 떠났다”며 “그런데 그놈은 무기징역을 받아 감옥에서 살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C씨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에도 두 딸과 연락했다고 한다. A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이랬다. ‘힘들어도 내 생각하면서 파이팅하세요. 마음에 안 들면 때려치우세요. 내가 먹여 살릴 테니까요.’

A(당시 39세)씨가 지난해 6월 25일 낮 12시에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카카오톡 대화 내용. A씨는 이날 밤 김모(34)씨에게 살해됐다. /유족 제공

C씨는 “나중에 감형받아 석방될 가능성이 있는 무기징역은 말이 안 된다”면서 “사형을 선고해 세상과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법상 무기징역을 선고받더라도 복역 20년이 지나면 감형과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법무부 심사를 거쳐 형을 종료하고 사회로 복귀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이 사건은 김씨와 검찰 양측에서 모두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해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