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영어유치원에 모집 문구가 붙어있다. 교육부는 이날 발표에서 비교·서열화. 3세 미만 대상 인지교습, 3세 이상∼취학 전 대상 장시간(1일 3시간 초과·1주 15시간 초과) 인지교습 등을 영유아 학원의 유해교습 행위로 분류하고 법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고운호 기자

경기 용인에 사는 직장인 정모(41)씨는 지난해 네 살 아들을 서울 대치동 영어 어학원에 보내려고 6개월간 500만원 넘게 썼다. 까다로운 학원 입학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별도 시험 대비 학원을 3개월간 다니고, 영어 발음 교정을 위한 과외 수업까지 받았다. 정씨는 “아이가 매주 영단어를 500개씩 외우며 열심히 했지만 정작 학원에 들어간 뒤에는 너무 지쳤는지 공부에 영 흥미를 보이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무리한 선행 학습을 하는 ‘영유아 조기 사교육’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과도한 학습으로 인한 아동의 발달 저해, 사교육비 부담 가중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자, 교육부는 1일 ‘영유아 사교육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만 3세 미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학원들의 영어·수학 등 주입식 교습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또 만 3세부터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 수업도 하루 3시간(주당 15시간) 이내로 제한한다. 특히 대치동 등 유명 학원가를 중심으로 입시 경쟁을 부추겼던 영유아 레벨 테스트(입학 시험)와 수준별 반 편성 고사도 원천 금지된다. 어기는 학원에 대해선 매출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제재 방안도 마련했다.

교육계는 사교육 규제 마련을 환영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병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이미 적지 않은 영유아 대상 학원들이 하루 3시간 미만으로 운영 중이어서 이번 대책만으론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며 “어릴 때부터 강도 높은 공부를 시키는 사교육의 ‘저(低)연령화’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강력한 규제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7세 아이에 “토플 성적 내라”… 우회 레벨 테스트도 금지

서울 대치동에 사는 김모(37)씨는 2년 전 아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면서 말하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영어 스피킹 과외를 따로 시켰다. 김씨는 “아들이 주말까지 매일 영어 공부를 하느라 힘들어했지만 주변 또래 아이들도 다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1일 교육부가 발표한 ‘영유아 사교육 대책’은 급성장하는 영유아 조기 교육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린이집·유치원 하원 이후 저녁 시간까지 이어지는 ‘학원 뺑뺑이’나 고액 과외 사례가 보편화되면서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만 2세 이하 영유아 사교육 참여율이 24.6%, 3세 50.3%, 4세 68.9%, 5세 81.2% 등으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유아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영어 유치원(영어 학원 유치부)이 154.5만원으로 다른 과목보다 많았다. 교육계에선 연간 유아 사교육비 규모를 최소 3조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영어 조기 교육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유명 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별도 학원 수업을 듣는 ‘파생 사교육’도 크게 늘었다. 2~3세부터 영어 학원의 5세반, 7세반에 들어가기 위해 개인 교습을 받는 식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어학원에서는 최근 만 7세 대상 입학 시험에서 ‘AI 시대에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싸우는 친구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등 성인도 답하기 까다로운 주제를 영어로 발표하거나 쓰게 했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44)씨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학부모 사이에선 영어 숙제를 돕는 고액 과외 선생이 인기”라며 “유치원에서 내는 단어 암기 과제가 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교사를 따로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그동안 각종 사교육 대책에도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자, 이번에 제재 수위를 대폭 강화했다. 교육부는 학원에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형태의 모집 시험·평가, 수준별 배정 목적 시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필 평가뿐 아니라 구술 평가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이후, 일부 학원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세 아이들에게 토플·토익 등 외부 기관의 공인 영어 점수를 요구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이 역시 금지된다. 학생 모집이나 반 배치를 위해 영유아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모든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다. 위반 행위 적발 시 학원 매출액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과태료 상한도 기존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교습 정지 등과 같은 행정처분을 비롯해 형사처벌, 과징금을 함께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효성을 놓고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레벨 테스트가 금지되더라도 학원들이 편법을 써서 다른 방식의 시험으로 우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예비 입학을 시켜준 뒤 보호자 동의하에 진행한 아이와의 면담 결과 등에 따라 최종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식으로 편법 시험을 치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강민규 교육부 영유아정책국장은 “각종 편법적인 선발 행위에 대해 앞으로 대통령령으로 구체화해 차단하겠다”고 했다.

특정 과목 교습을 금지한 정부 대책이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이번 사교육 대책 방안을 발표하면서 만 3세 미만 대상으로 한 ‘인지 교습’을 금지한다고 했다. 인지 교습은 강사 주도로 국어·영어·수학 등 입시 교과목의 지식 주입을 위해 이뤄지는 수업을 말한다. 예컨대 특정 영어 단어를 반복해 따라 읽거나 알파벳을 쓰게 하는 행위는 인지 교습에 해당한다. 반면 알파벳을 쓰지 않고 동요 등 노래로 부르며 익히는 것은 인지 교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수학의 경우 숫자 카드를 보여주며 1부터 100까지 순서대로 외우게 하는 것은 인지 교습이지만 ‘바구니에 든 사과를 하나씩 가져와서 몇 개인지 세어 보자’고 설명할 경우 동적인 놀이를 수반하기 때문에 인지 교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교육부는 “어떤 수업 방식이 인지 교습에 해당하는지 관련 지침서와 사례집을 만들어 금지 및 허용되는 교습 행위 개념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