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훈련을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등학교에선 글자를 읽고 쓸 줄 알면 끝이고, 중학교부터는 작품의 일부 내용만 발췌해 읽어요. 그러니 책의 재미를, 소설 읽는 법을 알 수 없는 것이죠.”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의 영어 수업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30년간 영어 교육과 읽기를 연구한 전문가다. 서구 사회의 문해력 개념 변화와 미국의 문해력 교육을 2000년대 초쯤 처음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모국어 수업 모습이 다른 이유로 역사적 배경 차이를 꼽았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서구에선 영화와 라디오 등이 발명되기 전 500여 년 동안 책이 유일한 오락거리였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책을 즐기는 문화가 갖춰졌다. 그런데 우리는 해방 이후 국민들이 책을 경험하려던 순간에 영화, 텔레비전 등이 들어와 버렸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역사적 배경 차이로 우리는 독서 문화 기반이 강했던 서구에 비해 더 빠르게 책이 뒤로 밀렸다”며 “지금은 중독성이 더 강한 유튜브, 숏폼이 등장해 하루 종일 이것만 보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그는 또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의 중심은 문맹 퇴치였지, 문해력 향상이 아니었다”면서 “이제는 문해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교사들도 책을 많이 읽지 않을 뿐더러, 교대나 사범대에서 책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교과서 위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 역시 주 단위로 채택하는 교과서가 있지만, 우리처럼 수업을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미국 교사들은 보통 개학 전 학생들에게 읽힐 작품들부터 정할 정도로 책 위주로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갈등이 전개되는 방식, 등장인물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독서 문화가 사회에 널리 퍼지려면 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데, 한국처럼 객관식 시험 대비가 우선이면 아이들도 읽기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그때만큼은 다른 걱정 없이 책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