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한 학교 교장 A씨는 작년 8월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택했다. 평소 학교 운영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한 학부모에게 지속적인 갑질을 당한 게 원인이었다. 그러던 중 A씨가 수업 시간 중 교실 밖을 배회하던 학생을 나무란 걸 알게 된 해당 학부모가 “아동 학대로 신고하겠다. 알아서 학교를 떠나라”며 협박을 했다. 결국 A씨는 교단을 떠났다.

최근 명예퇴직을 하는 교장·교감이 크게 늘고 있다. 9일 국회 김민전(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시도별 교장 명예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초·중·고교에서 명예퇴직한 교장·교감이 250명이었는데 작년엔 431명으로 5년 새 72%나 증가했다. 이 중 교장이 155명에서 351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289명의 교장·교감이 명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양진경

과거 학교장은 교사들에게 ‘꿈의 자리’였다. 교장 승진을 하려는 교사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했다. 교장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높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교장직이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많은 자리’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명예퇴직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공무직 종사자가 급증하면서 급식 파업 대응 등 교장의 인사·노무 관리 부담이 커진 게 큰 이유다. 방과후학교 업무 분장을 둘러싼 교사·공무직 간 갈등을 중재하는 것도 교장 몫이다. 특히 2023년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악성 민원 대응 업무도 교장에게 몰렸다.

명퇴하는 교감이 늘어나는 것도 업무 과중 때문이라고 한다. 교감은 원래 교장 승진을 위해 거쳐야 하는 코스였고, 일반 교사를 지도하면서 교장 지시도 따라야 해 업무가 많았다. 최근에는 일반 교사들이 부장 등 보직을 맡으려 하지 않아서 교감의 업무가 더 크게 늘었다.

학교 교감은 학교폭력대책위 등 30개 넘는 교내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당연직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경기 한 중학교 교감으로 명예퇴직한 B씨는 “저녁에 혼자 학교에 남아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일했지만 ‘고생하신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교사가 없었다”며 “평교사 때 30개 넘는 표창을 받을 정도로 교사를 천직으로 여겼지만 교감 승진한 지 1년도 안 돼 열악한 근무 환경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높아진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2024년 일반 교사의 담임 수당을 53%, 보직 수당을 2배 올리면서 교장·교감의 직급 보조비는 각각 10%, 20%가량만 올렸다. 교감 승진 이후엔 방과후 수업·보직 수당 등이 사라져 일부 학교에선 교장·교감보다 일반 교사 월급이 높은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기 지역 한 중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등교할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쓰지 않게 해달라는 주민 민원까지 처리하고 있다”면서 “관리직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해도 상응하는 수당을 못 받는다”고 말했다.

교육계는 앞으로 명퇴를 택하는 교장·교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교육부는 이달부터 기초학력 미달·학폭·아동학대 등 모든 학생 관련 행정 지원을 일원화하는 학생맞춤형통합지원제도(학맞통)를 시행했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인데, 교장·교감의 부담은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학부모 민원, 늘봄학교 확대, 급식 파업, 노조 압박 등 학교 관리직 교사의 책임과 역할이 크게 늘었지만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을 위한 실질적 권한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우와 근무 여건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