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조모(29)씨는 지난 22일 오전 전자책 앱을 켰다. 그런데 의자에 앉은 1시간 10분간 전자책 앱에 머문 시간은 40분뿐. 뭘 읽을지 고른 12분을 빼면 진짜 독서 시간은 28분에 그쳤다. 나머지는 카카오톡, 쇼핑몰, 인스타그램, OTT 등 6개 앱을 오갔다. 조씨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검색하게 되고, 문자랑 할인 쿠폰 알림이 자꾸 울려서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21일부터 나흘간 조씨를 포함한 학생, 직장인 6명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해 추적했더니 책을 읽을 때 스마트폰에 주의력이 분산되는 문제가 심각했다. 하루 최대 12시간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고, 최대 161회 휴대전화 잠금 화면을 해제했다. 이들은 AI(인공지능) 추천 영상에 빠져드는 순간 다시 책으로 돌아오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래픽=김성규

AI 시대 핵심 능력인 문해력을 키우려면 긴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 독서에 익숙했던 성인조차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때문에 독서를 못하는 ‘집중력 위기’를 겪고 있다. 본지가 채용 플랫폼 ‘캐치’와 함께 취업 준비생 533명을 설문했더니, 긴 글을 읽기 힘든 이유로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올라서’(59%), ‘스마트폰을 자꾸 확인하게 됨’(38%)을 많이 꼽았다. 전문가들은 ‘독서 집중력’을 지키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문해력을 키울 수도, 지킬 수도 없다고 경고한다.

◇독서 시작 12분 만에 집중력 와르르… 7개 앱 떠돌다 책 덮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대기업 이모(30) 대리는 일요일(지난 22일) 깨어 있던 16시간 중 3분의 1(5시간 28분)에 달하는 시간을 스마트폰에 썼다. 화면 잠금은 108회 해제했다. 9분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열어본 셈이다. 책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기 시작한 밤 9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7개 앱을 31분간 들락거렸다.

책을 펴자마자 유튜브를 열고 책 읽을 때 들을 음악을 골랐다. 6분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 상단에 중고 거래 앱 ‘당근’에 눈여겨보고 있던 물건이 올라왔다는 알람이 떴다. 곧바로 ‘당근’으로 간 이씨는 게시글을 1분 47초간 보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2분간 독서를 하다가 다시 그는 인스타그램 릴스에 접속했다. 이번엔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앱에서 ‘화제 게시글’ 알림이 울렸다. ‘연차를 냈는데, 팀장한테 연락이 왔다’는 제목이었다. 이씨는 내용이 너무 궁금해 알람을 눌러 게시글을 확인했다. 그러곤 릴스를 한 번 더 보고 오후 9시 30분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에도 집중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30분 읽고 인스타그램 릴스 보고, 11분 읽고 릴스와 카카오톡에 들어가는 식이다. 그러곤 갑자기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가 왜 적게 나왔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아파트 관리비 앱을 열어봤고, 곧이어 필요한 주방용품이 생각나서 쿠팡에서 주문했다. 어느새 밤 10시 24분이 됐고, 6분 후 이씨는 아예 책을 덮고서 인스타그램을 켰다.

그래픽=김성규

이날 이씨가 1시간 반 동안 읽은 책은 16장뿐이다. 그는 “중간중간 휴대폰을 했더니 뭘 읽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 난다”면서 “대학생 땐 한 달에 2권씩은 읽었는데, 이젠 1년에 5권도 안 읽는다. 숏폼이랑 커뮤니티 유머 글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책이 지루해서 자꾸 휴대폰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청소년 독서를 방해하는 실태는 더 심각하다. 고2 김모양은 21일 하루 10시간 29분 휴대전화를 썼다. 깨어 있는 시간의 70%를 스마트폰에 썼다. 오후 3시부터 2시간은 한국사 공부책을 폈다. 그 와중에도 올리브영, 틱톡, 인스타그램 등 앱 8개에 쉼 없이 접속했다. 경기도에 사는 중1 김모군도 24일 학원이 끝난 오후 6시 부모에게 스마트폰을 받았다. 그때부터 5시간 내리 스마트폰만 봤다. 김군 부모는 “늦게 시작한 만큼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3시간 30분간 틱톡에 올릴 영상을 편집했는데, 친구들끼리 틱톡 영상 조회 수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자극적 콘텐츠에 한 번 익숙해진 청소년에게 책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독서 장애 요인으로 많이 꼽은 것도 ‘공부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47.1%) 다음으로 ‘책보다 스마트폰 등이 더 재미있어서’(41.2%)였다(경기교육청 2024년 학생 독서 실태 조사). 김군도 “친구들이 내 영상에 남긴 반응을 보는 게 최고 도파민”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관찰한 초4 백모군은 21일과 22일 모두 태블릿PC를 12시간 25분씩 했다. 깨어 있는 시간의 80%가 넘는다. 백군은 문장이 3줄을 넘기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부모 심모(48)씨는 코로나 때 태블릿PC를 사주면서 책과 멀어졌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심씨는 “이제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소셜미디어에서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호주가 만 16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계정 보유를 전면 금지한 이후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튀르키예, 말레이시아 등도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금지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우리나라도 다음 달부터 학교 수업 시간에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다.

책을 읽기 위해 ‘디지털 디톡스(독소를 없앰)’를 하는 성인도 있다.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하는 북카페를 찾는 식이다. 대구 한 대학 교수 A씨도 최근 쿠바에 한 달간 다녀온 뒤 본인의 독서 집중력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깨닫게 됐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책을 거의 못 읽었는데, 쿠바가 인터넷이 잘 안 되니까 한 달간 5권이나 읽었다”면서 “요즘 주변 교수들도 긴 글을 못 읽겠다고 난리”라고 말했다.

이순영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제 독서에 집중을 못하는 산만함이 일부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 얘기가 아니다”면서 “디지털 활동의 ‘얕은 집중’에 뇌가 길들여지면서 독서라는 ‘깊은 집중’을 못하게 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