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과 중학생 10명 중 9명 이상이 학교 교과서 내용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스마트폰과 숏폼(짧은 영상)에 중독된 학생일수록 어휘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확인됐다.
본지가 국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2024년 충남교육청이 진행한 문해력 검사 보고서를 입수·분석한 결과, 초등생의 98%, 중학생은 92%가 정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교과서 지문을 다 읽지 못했다. 충남교육청이 ‘난독과 문해력 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검사에는 중학생(1~3학년) 145명, 초등 3학년 97명이 참여했다.
해당 검사는 학년별 국어 교과서 지문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글에서 평균 12~13개 문장(165~166개 단어)을 발췌해 학생이 제한 시간 안에 다 읽는지, 학생 시선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카메라로 추적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책을 어렵지 않게 읽는 성인의 읽기 속도가 초당 4~5개 단어라는 서울대 연구 등을 토대로 학생의 읽기 제한 시간을 1분(초당 2.5~3개 단어)으로 정했다.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도 많았다. 지문에 등장하는 어휘의 뜻을 묻는 테스트에서 초등학생 참가자의 93%, 중학생의 96%가 기준 점수(50~60점)에 미달했다. 연구진은 시간 내 지문을 완독하고, 어휘 테스트도 기준 점수를 넘어야 문해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초등학생의 전원, 중학생의 99.3%가 ‘문해력 결핍’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2023년 충남 지역 초·중학생 15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초등생의 72%, 중학생의 93%가 시간 내 완독을 못 했다. 박세당 난독과 문해력 연구소 소장은 “무작위로 뽑은 학생 상당수가 교과서 지문을 끝까지 못 읽은 것을 보면 10대의 문해력 저하가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단 건너뛰고, 시선은 중구난방… 학생들, 책을 숏폼처럼 본다
충남교육청의 문해력 검사에서 교과서 내용을 끝까지 읽지 못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글을 읽는 방식에서 큰 문제점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카메라로 책을 보는 학생의 눈동자 움직임을 따라가는 ‘시선 추적 검사’를 진행했다. 학생 시선을 따라 책 위에 점과 선이 그려지는데, 이 패턴을 분석해 전반적인 읽기 방법과 능력을 진단하는 방식이다.
정상적으로 교과서를 읽으면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평행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완독을 못한 학생들의 시선 움직임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지문을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은 부분을 다시 읽는 ‘시선 역행 및 회귀’ 현상이 심각했다. 또 시선이 문장 위아래, 좌우를 무질서하게 왔다 갔다 하는 ‘지그재그형’ 이동 현상도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진은 숏폼 같은 자극적 영상에 지나치게 길들여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숏폼처럼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는 영상은 동시에 여러 부분을 봐야 하는데, 책을 읽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시선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서혁 이화여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유튜브 영상과 숏폼에 익숙한 학생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글을 읽는 습관이 안 잡혀 있어 시선이 왔다 갔다 한다”며 “영상에만 몰입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문해력 격차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선 추적 검사에선 특정 단어에 오래 머물수록 큰 원이 그려진다. 학생들의 문해력 검사 결과에서는 굵은 포도알이 여러 개 뭉쳐진 듯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했다. 일부 학생은 지문의 첫 부분에만 굵은 포도송이가 잔뜩 생겼고, 나머지 부분에는 아예 시선을 두지 못했다.
숏폼에 과몰입한 학생들은 어휘력 테스트 점수도 낮았다. 문해력 검사에 참여한 중학생 중 사전 설문에서 ‘독서보다는 유튜브나 짧은 영상에 몰두한다’고 답한 학생 113명(78%)은 교과서 지문을 읽은 후 단어 뜻을 묻는 어휘 테스트에서 평균 29.3점을 받았다. 이는 ‘숏폼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학생 32명(22%)의 점수(32.4점)보다 3.1점 낮았다.
학생들은 평소 문해력 때문에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의 54%가 ‘두꺼운 책이나 긴 글에 일단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49%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다’고 답했고, ‘모르는 단어나 처음 보는 단어를 습관적으로 건너뛰거나, 반대로 오래 집중한다’는 학생도 40%였다.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으며, 습관적으로 건너뛰어 읽는다’(32%)는 학생도 있었다.
이처럼 스마트폰 등장 이후 ‘후천적 난독’을 겪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시도교육청이 난독증 같은 학습 장애를 가진 소수 학생에 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전반적인 독서 활동 강화 대책은 부족한 상황이다. 교육부도 문해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자 교육과정을 개정해 2018년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생이 국어 시간에 최소 책 한 권은 읽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정책을 도입했다. 이후 ‘한 권만 읽으면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에 따라 2022년 교육 과정 개정 때 ‘한 학기’라는 조건을 뺐다. 하지만 한 권도 깊이 있게 읽지 않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학교의 문해력 강화 대책이 부족한 가운데 학원을 찾는 학부모는 늘고 있다. ‘아이 스스로 책을 읽지 않으니, 학원에 보내서라도 억지로 읽고 쓰게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어 사교육 참여 학생의 월평균 학원비는 16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10.8% 급증했다. 영어(6.5%), 수학(6.9%), 사회·과학(6.6%) 등 다른 주요 과목의 증가 폭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부산의 영어 학원 강사 최모씨는 “영어 지문을 한글로 해석해 줘도 정작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 ‘국어부터 공부하라’고 권할 정도”라며 “국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어·수학 등 다른 과목 성적도 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관련 학원 수강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순영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현재 전국 교실에선 문해력 편차로 인해 수업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해력 수준이 평균에 못 미치는 학생은 끌어올리고 보통인 학생은 고급 문해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준별 교육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