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자를 보급하는 데 수백, 수천 년이 걸렸는데 생성형 AI(인공지능)는 2년도 안 돼 전 세계에 퍼져 인류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AI라는 폭발적 변화 앞에서 우리의 문해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가 인류의 큰 과제가 됐다.”
인지 신경 과학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 매리언 울프(Wolf) 미국 UCLA 교수는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AI 덕분에 누구나 수백 페이지 보고서, 논문을 뚝딱 만드는 시대가 됐다”면서 “하지만 오히려 AI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들여 종이책을 읽고 비판적 사고를 단련하는 노력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울프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발달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 터프츠대에서 아동발달학 교수, ‘독서와 언어 연구 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난독증이 있는 아들을 둔 울프 교수는 40여 년간 독서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해왔다. 디지털 시대 문해력 저하 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책 읽는 뇌’(2007), ‘다시 책으로’(2019)의 저자이기도 하다.
울프 교수는 “요즘 10대는 틱톡 같은 숏폼과 AI로 인해 과거 세대보다 복잡하고 긴 글에 몰입하기 어려워하는 ‘인지적 인내심(cognitive patience)’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딥 리딩(깊이 읽기)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울프 교수와 일문일답.
-AI 확산은 아이들의 읽기에 어떤 영향을 주나.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AI에 의존하는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에 비해 뇌 활동이 현저히 적고, 뇌 발달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깊이 읽기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추론 능력, 비판적 사고력 발달이 막히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비교해 AI가 문해력에 끼치는 영향은.
“AI가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 최소한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 정보를 찾을지, 어떤 내용을 채택할지 고민하지만 AI는 그런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AI 의존은 청소년의 ‘독서 회로’를 위축시킬 수 있다.”
-AI 사용을 금지해야 하나.
“생성형 AI가 가져다주는 기술적 혜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라나는 아이들의 지적 성장을 감안하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성장기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뇌 신경세포 간 연결이 활성화되는데 AI에 의존하면 그 능력이 상실된다.”
-문해력 저하라는 AI의 부작용은 10대에게만 나타나나.
“성인도 마찬가지다. 최근 MIT(미 매사추세츠공과대), 하버드대 연구진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지식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AI 도입 후 업무 능력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AI를 사용한 사람들이 작업 속도는 빨랐지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AI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하는 비율이 AI를 안 쓰는 사람보다 높았다. 빅테크 종사자도 AI에 의존하면 비판적 사고력이 저하될 수 있는 것이다.”
-AI 시대에 문해력 저하 문제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일한 해독제가 긴 글을 꾸준히 읽는 ‘깊이 읽기(deep reading)’다. 가장 깊은 수준의 독서인 ‘깊이 읽기’야말로 AI로 인한 지적 쇠퇴에 맞설 수 있는 저항 수단이다. 그리고 추론과 비유적 사고 등 기초 능력도 키워준다. 독서(Reader)를 하지 않는 사람은 리더(Leader)가 될 수 없다.”
-AI 시대에 꼭 길러야 할 능력은 뭘까.
“허위 정보를 거를 수 있도록 배경 지식을 충분히 쌓고 추론 기술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긴 글을 꾸준히 읽는 게 중요하다. 읽기 행위는 인간의 유전자에 있는 선천적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훈련해야 한다.”
-아이들이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데.
“스마트폰, 틱톡 등 아이들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디지털 매체가 너무 많다. 교사들도 아이들이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니 짧은 지문 위주로 가르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아이들의 사고력 증진을 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성공하기 어렵다. 독서가 즐거운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하는 데 교육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뇌 발달이 한창 진행되는 10~12세까지는 스마트폰, AI 등 디지털 기기에 노출은 최소화하고, 책을 우선 접하게 해야 한다.”
-한국 교육 상황에 대해 알고 있나.
“한국 교수들과 교류하고 한국에서 강연도 하면서 대부분 교육이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대표되는 상위권 대학 입시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주어진 지문에서 빠르게 정답을 찾는 한국식 읽기 교육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 근육인 고급 문해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오히려 비판적 사고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딥 리딩(deep reading·깊이 읽기)
단순히 책의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 문장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독서 방법. 텍스트를 빠르게 보는 훑어보기(skimming)나 속독(速讀)과 달리 기존 배경지식과 연결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책 내용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