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한국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고 정보의 파편만 훑기 때문입니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Schleiche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기술국장은 8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학생들에 대해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슐라이허 국장은 OECD에서 3년 주기로 세계 만 15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비교·분석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2000년 직접 개발했을 뿐 아니라 20년 넘게 맡고 있는 총괄 책임자다.
현재 시험에 능한 우리나라 학생들은 지문을 읽고 답을 고르는 식의 읽기 문제 해결 능력은 높은 편이다. 실제로 PISA 2022 읽기 영역에서 한국 평균 점수는 515점으로 OECD 평균(476점)보다 높은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읽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이른바 ‘고급 문해력(advanced literacy skills)’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한국 학생의 ‘고급 문해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PISA 조사에서 한국 학생의 사실·의견 식별률은 25.6%로 OECD 평균(47%)에 못 미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미국(69%)이나 영국(65.2%)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다. 정보의 출처를 비교하거나 신뢰성을 평가하는 ‘팩트체크’ 지수 역시 한국 학생은 -0.294(OECD 평균은 0)로 꼴찌 수준이다.”
-읽기 능력이 높은데, ‘고급 문해력’은 왜 낮을까.
“긴 책을 안 읽는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 젊은 세대의 읽기 행태가 반영된 결과다. 독서는 인물, 사건 간 복잡한 관계를 구축하고, 여러 관점을 이해하며, 내용을 계속 상기하는 행위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 특히 요즘은 AI를 통해 원하는 답의 ‘파편’만 손쉽게 얻고 만다. 비판적 사고를 디지털의 편리함과 맞바꾼 것이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인가.
“PISA 2022 설문에서 ‘온라인에서 읽는 것을 믿는다’고 답한 한국 학생이 50.9%로 OECD 평균(39.8%)보다 높았다. 한국 교육이 정해진 답을 찾는 ‘순응’을 중심으로 설계된 탓이다. ‘학교에서 온라인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 토론한다’는 응답 역시 32.9%로, OECD 평균(46.9%)보다 낮았다. 다른 국가에 비해 학교에서 고급 문해력 교육을 적게 받는다는 뜻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고급 문해력은 무엇인가.
“과거엔 신문·방송 등 전문가가 선별한 정보만 유통됐다. 이때는 주어진 정보를 읽고 잘 이해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소셜미디어와 AI의 영향으로 사실이 아닌데도 그럴듯한 주장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탈진실)’의 시대다. 아무도 무엇이 사실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파편화된 정보를 스스로 재구성하고 검증할 줄 아는 능력이 AI 시대 문해력의 핵심이다.”
-문해력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점은.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되기 매우 쉬워질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용자가 원하는 답만 내놓은 AI 알고리즘으로 확증 편향도 심화된다. 사회 양극화는 물론, 민주주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해력을 끌어올리려면 뭘 해야 하나.
“문해력은 읽기 습관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어렸을 때부터 독서에 대한 호기심, 흥미, 몰입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읽기 강요’가 돼선 안 된다. 프랑스에선 3세부터 읽기 교육을 했는데, 되레 15세가 됐을 때 다른 국가에 비해 읽기 몰입도와 숙련도가 떨어지는 역효과를 겪었다. 읽기 교육은 독서에 대한 호기심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