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수업 시간. 독립운동가 일대기를 발표하던 한 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조문을 했다”고 했다. 생성형 AI가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이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찰에서 참배한 행보를 안중근 의사 본인이 한 것처럼 뒤섞어서 가짜 답변을 내놓았는데, 이를 그대로 발표한 것이다. 담당 교사는 “역사적 배경 지식이 부족한 아이들이 AI의 환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보고 큰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 깊숙이 AI(인공지능)가 들어오면서 AI의 정보에 대한 판단 능력이 중요해졌지만, 학교 현장에선 “AI를 맹신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본지가 한국교총과 함께 전국 초·중·고 교사 94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2.5%가 “과도한 AI 사용이 학생의 문해력을 떨어뜨린다”고 답했다. AI 사용이 문해력을 저하시키는 이유에 대해선 가장 많은 51.8%가 “깊이 있는 사고 과정을 건너뛰고 즉각 답을 얻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 자료 찾는 과정 생략’(18.2%), ‘AI 결과를 검증 없이 수용’(15.3%)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설문에 참여한 한 교사는 “AI 답변을 교사 설명보다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며 “숏폼 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긴 글은 읽지 않고 AI가 정리해 준 답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해진 탓”이라고 했다. 다른 교사는 “AI의 답변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사용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AI 오류 답변 그대로 수용
AI가 정확한 정보를 줘도 문해력이 부족해 답변 내용을 ‘오독(誤讀)’하거나 이해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의왕의 초등학교 교사 최모 씨는 수업 시간에 ‘탄소 중립 대안’에 대해 발표하게 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비닐봉지가 종이봉투보다 제조 에너지가 적게 든다’는 AI 답변만 보고 “비닐봉지 사용이 친환경”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AI 답변 뒷부분에 ‘비닐은 썩지 않는다’는 부분은 읽지도 않고 답을 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성인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말 부산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 수업에서 수강생 30명 중 절반 정도가 AI로 과제를 작성하면서 엉뚱한 내용을 적어냈다. ‘대한민국 고독사 방지 및 지원 특별법’이란 법안을 인용해 “정부가 매년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고 썼는데, 실제 법안명(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실태 조사 주기(5년) 모두 달랐다. 담당 교수는 “AI의 잘못된 답변을 그렇게 많은 학생이 그대로 인용한 걸 보고 놀랐다”면서 “요즘 전공 서적이나 논문을 끝까지 읽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젠 스스로 논문이나 레포트를 쓰는 학생이 더 희귀해질 것”이라고 했다.
교육계에선 어린 나이부터 생성형 AI에 의존할수록 학습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근 발표한 ‘2026 디지털 교육 전망’에서 튀르키예의 학교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수학 문제를 풀게 했더니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학생이 도움을 안 받은 학생보다 점수가 48%나 높았다. 그런데 실제 시험에서 AI를 못 쓰게 했더니 오히려 AI를 쓰지 않았던 학생보다 17%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은 결과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박형빈 서울교대 교수는 “독서는 정보의 앞뒤를 맞춰보고 맥락을 파악하면서 ‘지식의 층위’를 쌓는 훈련 과정인데, 그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겐 AI의 매끄러운 답변이 절대적 권위처럼 작용한다”면서 “정보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기본 근육인 문해력 재건이 시급하다”고 했다.
◇“AI 사용 전 읽기 훈련부터”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AI를 본격 사용하기 전 학교 차원에서 충분한 ‘읽기’ 훈련이 선행돼야 고급 문해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AI보다 책·신문 등 기존 매체를 통해 긴 글을 읽는 과정을 거쳐야 체계적으로 기초 배경 지식을 쌓고,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미우리신문이 야마구치 신이치 일본 국제대 교수와 함께 한·미·일 3국 3000명(15~69세)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문을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확률이 5% 높았다. 반면 소셜미디어를 신뢰하는 사람과 뉴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짜 정보에 잘 속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경 이화여대 저널리즘교육원장은 “디지털 기기보다 전통 매체로 정보를 읽어온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점이 형성돼 있어, 가짜 정보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며 “신문과 같은 기존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은 가짜 정보를 보면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정말 사실인지 의심하고 확인하려는 경향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