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논문 출판 규모는 세계 상위권에 근접했지만 논문당 피인용 수 등 연구의 질(質)을 나타내는 지표 실적은 아직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계에선 “연구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AI 3대 강국’ 진입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세계적 학술 출판사인 엘스비어에 의뢰해 최근 5년간(2020~2024년) 세계 최대 색인·인용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된 전 세계 연구 논문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AI 관련 논문이 총 5만8913건으로 세계 6위를 기록했다. 1~3위인 중국(68만4914건), 미국(28만9794건)·인도(22만2981건)와 비교하면 아직 차이가 크지만, 상위권에 근접했다. 4위는 영국(9만56건), 5위는 독일(7만7423건)이었다. 그동안 한국은 AI 분야 투자나 인재 규모에서 세계 10위 정도로 평가받았는데, 연구의 양적 지표에서는 비슷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연구의 질적 측면에선 순위가 낮았다. ‘논문 수’ 상위 50국을 ‘논문당 피인용 수’로 순위를 매겼을 때 한국은 22위(평균 18.3회)에 그쳤다. 1위 싱가포르(28.5회), 2위 홍콩(27.8회), 3위 호주(27.4회), 4위 스위스(24회) 등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논문 피인용 영향력 지수’(FWCI) 기준으로는 50국 중 26위였다. FWCI(Field-Weighted Citation Impact)는 논문이 같은 학문 분야, 같은 기간에 출판된 다른 논문과 비교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지를 나타낸 지표다. 보통 의학이나 공대 등 응용 분야는 논문 수도 많고 인용 횟수도 많지만, 기초 학문이나 인문학은 논문 수 자체가 적어 인용도 적기 때문에 일률적 비교가 어려웠다. FWCI는 이런 차이를 보정한 것으로 최근 논문의 영향력 지표로 많이 쓰인다. FWCI가 1보다 크면 해당 분야에서 세계 평균보다 많이 인용된 것이다. 한국은 AI 분야 논문의 FWCI가 1.6으로 세계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1위 홍콩(2.81), 2위 싱가포르(2.69), 3위 호주(2.36), 6위 미국(2.17) 등에는 크게 뒤처졌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연구의 양을 위주로 보는 평가 시스템과 국제 협력이 부족한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국내 대학들은 교수 업적 평가 때 논문 발표 건수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논문 피인용 지수 등 연구의 질이 높으면 가중치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 평가에서 비중은 적은 편이다.

반면 홍콩, 싱가포르 대학에서는 논문 수뿐 아니라 피인용 수, 국제 협력 비율, 특허 출원 규모 등 다양한 지표를 고르게 평가한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기술 사업화 여부도 교수 평가에 비중 있게 들어가기 때문에 싱가포르 대학 교수들은 논문을 상대적으로 적게 쓰더라도 영향력 있는 연구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해외 연구자와 함께한 논문 비율을 보는 ‘국제 연구 협력’ 지표에서 한국(33%)은 50국 중 43번째에 그쳤다. 반면 FWCI 지표 1위인 홍콩은 국제 연구 협력 지표(82.4%)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77.1%)였다. 엘스비어 장현주 이사는 “다양한 데이터 확보가 관건인 AI 분야에선 3~4국 이상 대학·기업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해외 연구자와 함께 논문을 쓰면 해외에서도 인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추가 공동 연구 기회도 많아지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부분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