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광탄면은 박달산, 벽초지 수목원 등 임야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조용한 산간 시골 마을이다. 그런데 요즘 이 지역 일반고 광탄고의 대학 진학 실적 때문에 동네가 들썩거리고 있다. 한 학년이 1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서울대 2명, 연세대 6명, 고려대 4명 등 일명 ‘스카이(SKY)’ 대학에 12명(중복 포함)이 합격했고, 카이스트, 교대 합격자도 나왔다. 인(in)서울과 주요 대학 합격자는 총 55명인데, 이 중 22명이 최종 등록했다. 3학년 100명 중 절반이 군(軍) 특성화 학급과 운동 특기자인 걸 감안하면 우수한 진학 실적을 낸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나자 학교엔 “마을의 경사다” “자랑스럽다”는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광탄고는 2024년 전까지 10년 넘게 서울대 합격생 0명이었다. 연세대나 고려대 합격자만 간혹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신 2등급대’ 학생도 연·고대에 붙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농어촌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정도 실적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학교가 전형 분석, 학생부 관리 등 입시 대비를 특목고·자사고급으로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2022년부터 입시 전략을 개편했고, 차별화되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만든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변화를 시작한 건 인구 감소로 학생이 줄면서다. 광탄면의 10대 인구는 2010년 1513명에서 작년 494명으로 급감했다. 광탄고 신입생도 2010년 144명에서 현재 102명으로 줄었다. 사교육 불모지에 스터디 카페 하나 없어 일찌감치 자녀 교육을 시키려 인근 도시로 떠나는 부모가 많았다. 이때 파주 출신으로 당시 고3 담임이던 노영한 교육진학부장이 “학생을 잡으려면 결과로 증명하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그는 “우리가 노력하면 학생들도 충분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입시 흐름을 읽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학기마다 대학 15곳의 입학사정관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직접 대학도 찾았다. 졸업생을 섭외해 재학생 3~4명에게 15회 이상 온·오프라인으로 진학 상담을 하는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생 희망 전공과 비슷한 전공자를 연결해줬다.
학교는 학생부에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탐구 활동을 마련했다. ‘플라스틱 분해 과정 비교’ ‘회전력 기반 발사 시스템’ 등을 연구해 발표하는 ‘진로 학술제’가 대표적이다. 학술제엔 지역 주민까지 초대했다.
지금도 광탄고 교사 25명 가운데 6~7명이 매일 밤 남아 학생 상담을 하고 학생부를 쓴다. 방학에도 아이들과의 상담을 위해 매일 출근하는 교사도 있다.
이번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와 카이스트 등에 합격한 김보원(19)양은 학교 교육만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학원에 가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이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양은 기숙사에 살면서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자습했다. 밤에도 궁금한 게 있으면 교사에게 물어보고 원서 전략까지 교사와 함께 짰다.
고려대가 올해 신설해 1명을 뽑은 ‘의대 다문화 전형’ 합격자도 광탄고에서 나왔다.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인 A(19)군이다. A군은 우수한 내신 성적(1.02등급)으로 연세대 치대, 가톨릭대 약대에도 합격했다. A군은 “학생부에 의약학 계열에 대한 관심, 화학 탐구 활동 등을 골고루 잘 담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선생님들이 학생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정성껏 생기부를 써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영한 교육진학부장은 “작은 시골에서도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