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에 주차된 통학버스. /연합뉴스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의 A 학원은 지난해 4·7세 대상 입학 테스트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레벨 테스트를 폐지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현재 이 학원은 입학 상담을 하면서 ‘1 대 1 영어 인터뷰’를 본다. 또 전에 다니던 학원에서 영어 실력이 적힌 평가서를 받아오라고 하거나, 아이가 영어로 말하는 영상을 촬영해 제출하라고도 한다. 작년 말 이 학원 설명회를 다녀온 전모씨는 “정부 단속 때문에 이제 레벨 테스트가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학원마다 방식이 달라 준비할 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작년부터 이른바 ‘4·7세 고시’를 근절하겠다고 나서면서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학원가에서 횡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작년 7월 학원들의 영유아 대상 입학 시험이 아동 발달 단계에 맞지 않아 아동 인권 침해라며 전국 영어 유치원을 점검하고 지필 시험을 치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런데 학원들이 새로운 방식의 평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A학원처럼 구술 면접을 보거나, 체험 수업을 통해 아이 실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일단 선착순이나 추첨으로 아이들을 모집해 ‘기초반’을 운영하면서 수업 중에 시험을 쳐서 상위반에 배정하는 곳도 있다. 영재임을 증명해야 입학 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유명한 B영어학원은 올해부터 지필 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4세 미만 대상 영어학원 출신만 입학할 수 있도록 방식을 바꿨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4세 고시 잡으려다 2세 고시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7세 고시’ 대신 ‘8세 고시’로 방향을 튼 학원도 많다. 7세 고시는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연말에 다음 해부터 다닐 초등반 입학을 위해 치르는 시험을 가리킨다. 8세인 초등학생부터는 유아가 아닌 만큼 레벨테스트 시기를 늦춰 규제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강남의 C어학원은 최근 지필 시험을 없애는 대신 초2반(초1 대상) 입학 신청 조건으로 ‘토플(TOEFL) 100점 이상’ 등을 내걸고 있다. 토플 100점은 미국 상위권 대학이 입학 요건으로 내거는 수준이다.

지난달 18일 영·유아 대상 레벨 테스트를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학원 등은 유아를 대상으로 모집이나 수준별 배정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 또는 평가를 실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개정안이 곧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면 4·7세 고시를 철저히 단속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레벨 테스트 단속을 위해 한시 조직으로 만든 ‘영유아 사교육 대책팀’ 운영도 최근 1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법이 시행돼도 ‘시험 또는 평가’의 정의가 모호해 다른 방식의 레벨테스트가 우후죽순 생겨나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며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규제 범위를 명확히 정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