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융합 연구를 하는 한양대 올펙토 연구센터는 연구원 10여 명 모두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이다. 박사 후 연구원(포스트 닥터·포닥)을 수년째 구하지 못해 학생으로만 연구진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실의 ‘허리’라고 불리는 포닥이 없다 보니 연구·개발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펙토 연구센터를 이끄는 장용우 교수는 “정부 차원의 포닥 지원 정책이 해외에 비하면 부실하고 대학 재정 여건도 악화해 포닥 처우가 좋지 않은 탓이 크다”며 “해외로 나간 포닥이 경력을 쌓고 한국에 복귀하고 싶어도 처우 차이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국내 신규 이공계 박사 가운데 해외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 외국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서 ‘포닥’을 하거나 ‘해외 취업’을 하기 위해 한국을 떠난다는 계획이었다. 석·박사 학생이 줄어 과학 인재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학위 취득자들조차도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대학 연구실에 ‘토종 인재’가 씨가 마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8345명을 전수 조사한 ‘국내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의 특성과 초기 노동시장 이행 실태 조사’에 따르면, 1년 이내 해외 이주 계획이 있는 박사가 709명으로 2018년(588명)보다 121명(20.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이주 계획이 있는 박사 가운데 공학 계열이 310명(43.7%), 자연 계열이 244명(34.4%)이었다.

해외 이주를 계획 중인 박사 10명 중 8명(81.3%)은 그 이유에 대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포닥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해외 취업(12%)이라고 답한 사람도 많았다.

포닥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립적인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연구 경력을 쌓는 단계로, 창의성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로 꼽힌다. 중국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의 핵심 알고리즘 개발에도 20~30대 포닥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배영찬 한양대 공대 명예교수는 “인재들이 해외에서 2~3년 경험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처우 때문에 돌아오지 않아 ‘포닥 인력난’이 심하다는 것”이라며 “한국 대학들이 세계 대학 평가에서 매년 순위가 떨어지는 이유 역시 가장 창의적인 연구·논문을 뽑아내야 할 포닥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포닥으로 연구실에 들어갈 경우 받는 연봉은 4000만~50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 계열 포닥은 이보다도 적게 받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포닥 최소 연봉을 7만1000달러(약 1억400만원), 하버드대는 6만7600달러(약 9860만원)로 보장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연구 지원비, 의료보험 등 혜택도 많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는 포닥에게 8만 싱가포르달러(약 9070만원) 연봉과 함께 주거비, 연구 지원비 등 각종 혜택을 주며 세계에서 우수 포닥을 흡수하는 상황이다.

교육계에서는 한국도 이제는 포닥을 ‘임시직’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되고 정부가 공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송창용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 영향으로 미국을 떠나려는 과학 인재가 상당히 늘었다”며 “한국이 떠나간 토종 인재와 해외 우수 인재를 불러들일 최적기”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작년 300억원을 투입해 4대 과학기술원 AI 융합 분야 연구단 소속 포닥의 처우를 개선하는 ‘이노코어’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도 1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학가에서는 “포닥 유출을 막기엔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AI 관련 연구에만 지원을 하고, 지원 대학도 4대 과기원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