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A양은 지난해 초 영어 공부를 하려고 휴대전화에 채팅 앱을 깔았다. 거기서 20대 미국 남성을 알게 돼 매일 대화를 나눴다. 한 달 정도 지나 서로 가까워졌을 때 남성이 A양에게 ‘너 평소 사진 보여줄래?’라고 물었다. A양은 별다른 의심 없이 셀카로 얼굴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냈다. 하지만 며칠 뒤 이 남성은 A양의 사진을 가공해 유사 성행위를 하는 모습의 딥페이크(가짜 영상)를 만들어 A양에게 ‘돈을 주면 공개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10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학업, 성(性) 문제로 고민이 많은 청소년에게 접근해 공감대를 쌓은 후 이들의 사진, 영상을 딥페이크로 제작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피해를 신고한 10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3052명으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8년(111명)과 비교해 3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 피해자가 3000명을 넘은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물 대부분 피해자 모르게 온라인에 유통되기 때문에 실제 피해 규모는 10배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2022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도입된 이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개인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AI 앱으로 나체 등으로 바꾸는 게 너무 쉬워졌기 때문이다. 디성센터 관계자는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아동·청소년일수록 일상 모습을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짧은 영상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 범죄자들의 주 표적이 되고 있다”며 “최근 전 연령대를 통틀어 10대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증가율이 가장 높은 추세”라고 했다.

최근엔 딥페이크 불법 영상에 피해 청소년의 이름이나 집 주소, 학교 등 인적 사항이 함께 공개되며 2차 피해도 늘고 있다. 딥페이크 영상이 ‘서울 ○○고 △양’이라는 자막과 함께 유포돼 이를 본 제3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해 금전을 갈취하는 식이다. 노현서 성평등가족부 디지털성범죄방지과장은 “텔레그램 등 온라인에 ‘딥페이크 영상 제작해 드립니다’라고 광고하는 불법 대화방이 늘고 있다”며 “누구나 AI를 활용한 영상 편집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최근엔 10대 딥페이크 범죄자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늘면서 10대 성폭력 범죄 피해 규모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2024년 경찰에 입건된 아동·청소년(만 20세 이하) 대상 성폭력 범죄가 1만3092건으로 2020년(9274건)보다 40% 넘게 증가했다. 특히 10대 피해자의 36%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성폭력 범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들이 스마트폰, 소셜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성범죄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교사가 딥페이크 피해를 막겠다며 10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디성센터 관계자는 “10대들은 인스타그램을 못 쓰게 해도 금방 다른 채팅 앱을 내려받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작정 앱을 못 쓰게 막기보다는 범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올바른 사용법을 꾸준히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