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AI(인공지능) 인재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4대 이공계 특성화 대학(과학기술원)의 ‘AI 단과대’ 설립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AI 단과대는 생성형 AI 개발과 관련된 국가 정책·전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부를 가리킨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가 올 3월, 울산·대구·광주과기원이 각각 2027년 3월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밀어붙이면서 4대 과기원은 학생·교수진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이스트 AI 단과대는 지난달 정원 100명을 목표로 학부 1학년생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단 6명에 그쳤다. 신입생들이 ‘무전공’으로 입학하는 카이스트는 1학년 말에 학생들이 세부 전공을 신청한다. 그런데 정부가 AI 단과대 설립 발표를 학생들의 전공 신청 기간(12월 1~19일) 도중인 지난달 11일에 한 것이다. 이미 상당수 학생이 다른 전공을 택해 AI 단과대에 지원할 1학년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AI 단과대 내 4개 학과 중 AI컴퓨팅학과에는 지원자가 있었지만, 나머지 3개 학과(AI시스템·AI미래·AI전환학과)에는 한 명도 없었다. 대학 측 역시 학생 모집 전 교수진이나 커리큘럼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학생은 “어떤 교수님들한테 무엇을 배울지가 중요한데, 관련 정보 없이 학부 이름만 있었다”며 “많은 학생이 주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카이스트는 복수 전공·부전공, 전과 등을 통해 목표한 정원을 앞으로 채워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말에서야 AI 단과대 학부장과 4개 학과의 학과장 인선을 마치고, 기존 AI 관련 전공 교수들을 AI 단과대의 겸임 교원으로 임명했다.
내년 3월 AI 단과대 출범을 목표로 삼은 다른 3개 과기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록 준비 시간이 1년 더 남았지만, 최대 관건인 교수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체적인 학생 모집 규모나 커리큘럼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상대적으로 약한 인지도 탓에 해외에서 교수를 데려오기도 쉽지 않다. 한 과기원 고위 관계자는 “요즘 AI, 반도체 전공 교수는 몸값이 너무 높아 국내 대기업도 영입하기 힘든데, 이들을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데려오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들과 카이스트는 지난달 초 청와대 주도로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오스틴 등 3개 지역을 각각 방문해 홍보 부스를 차려 놓고 AI 분야 교수, 연구원 영입을 시도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기존에 있던 AI 관련 전공인 전산학부, 전기전자공학부 등과 차별화된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뿐만이 아니다. AI 단과대 설립에 필요한 핵심 과제들 역시 아직 별다른 진척 없이 초기 논의 단계 수준이다. 정부는 아직 생성형 AI 연구·개발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 확보와 대규모 전력 확충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런 만큼 과기계에선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 과정을 새로 설립하려면 준비 기간이 통상 2년 이상 걸리는데, AI 단과대 설립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각 과기원에 AI 단과대 설립 지시를 내린 건 지난해 7~8월쯤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출연 연구소 관계자는 “중국 칭화대, 미국 퍼듀대 등 해외 대학도 AI 단과대를 도입했지만, 대부분 기존 AI 연관 전공 학부와 통합하는 방식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였다”며 “수개월 만에 제로베이스에서 단과대 하나를 뚝딱 만들라는 발상 자체가 탁상 행정이자 전시 행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