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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고등학생 A군은 부모와 갈등, 교우 관계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우울감을 겪다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A군은 자살 시도와 동시에 정부의 청소년 온라인 상담 플랫폼 ‘다 들어줄 개’에 고민 글을 남겼다. 상담사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관이 자해 중인 A군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중학생 B양도 친구 관계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지난 6월 탈출구로 자해를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방법을 검색해 따라 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자해 강도가 점점 심해지던 B양은 정부 상담 플랫폼의 추천으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A군과 B양처럼 우울감과 외로움, 불안을 호소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둘은 다행히 정부 상담 시스템을 이용해 최악의 상황을 면했지만, 올해(10월 말 기준)만 초·중·고 학생 19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등학생이 117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은 71명, 초등학생도 5명이 자살했다. 2015년(93명)보다 두 배 넘게 늘었고,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작년(221명)을 넘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학생의 마음 건강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자 교육부는 30일 ‘학생 마음 건강 지원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우울감 확산이나 낙인 효과 등을 우려해 주로 학교별로 조심스럽게 이뤄졌던 대책을 체계화하고 공론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앞으로 학교가 진행하는 학생 마음 건강 상담 기록 양식이 통일되고, 학교는 그 기록을 교육부가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그간 학생 상담 기록은 상담사들이 별도 기준 없이 작성해 내용과 형식이 제각각이었다. 보관 지침도 없었다. 또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 상담 기록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살 징후가 있는 학생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앞으론 학생·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상담 기록을 학교끼리 공유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2030년까지 모든 학교에 전문 상담 인력을 배치한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교 1만2348곳에 배치된 상담 인력은 총 8013명. 임용을 통과한 상담 교사가 5169명, 상담 자격증을 갖춘 상담사가 2844명이다. 앞으로 상담 인력을 1만명 가까이로 늘려 ‘상담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소규모 학교는 상담사 1명이 여러 곳을 맡는 방식으로 상담을 하게 된다.

특히 내년부터 학부모 동의가 없어도 필요한 경우 학교장이 학생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이의 정신 건강 상태가 심각해 학교에서 치료나 상담을 권해도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상담 결과에 따라 학교장이 직접 상담·치료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내년 3월 시행된다.

현재 모든 초·중·고교생이 3년마다 받는 ‘정서·행동 특성 검사’ 주기를 1년 또는 2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검토한다. 위기 징후 학생을 빨리 발견하기 위해서다. 병원 진료비만 지원하던 ‘학생 마음바우처’ 지원 범위를 외부 기관 상담비로 확대한다.

자살 학생이 급증한 지역은 교육부가 직접 현장 점검에 나서고 컨설팅도 지원한다. 중앙 부처가 시·도에서 발생한 학생 자살 사건을 직접 챙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간 교육부는 지역 분위기가 악화되고 시·도교육청의 자치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학생 자살 사건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지역의 문제로 두기엔 학생 자살 문제가 너무 심각해졌다는 판단에 중앙 부처 차원의 종합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내년 초 학생마음건강지원법을 제정해 법적인 근거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