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되는 자녀를 키우는 서울의 직장인 유모(41)씨는 최근 가정통신문을 받아보고 부랴부랴 아이를 맡길 학원을 찾아보고 있다. 통신문에 내년 3학년은 늘봄학교 이용이 어렵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내년부터는 초등학생 전 학년이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며 “연말에 갑자기 이런 공지를 하면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어디에 맡기라는 것이냐”고 했다.
‘돌봄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늘봄학교 사업을 이재명 정부가 사실상 철회하면서 학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늘봄학교는 희망하는 모든 초등학생을 오전 7시부터 최대 오후 8시까지 학교가 책임지고 돌본다는 취지로 2023년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교육부는 2024년 초1 전원, 2025년 초 1·2 전원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지난 3월 기준 전체 초1~2의 81.3%(55만2000명)가 이용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계획을 바꿔 내년에도 초1·2학년만 대상으로 늘봄학교를 진행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대신 초3 학생들에겐 연간 50만원의 ‘방과후 프로그램’ 이용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3학년부터는 늘봄학교보다 영어·수학 등 교과 위주인 ‘방과후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고 했다. 3학년 이상 학생들까지 학교에 남아 있으면 교직원의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것도 주요 이유였다. 현 정부는 학교보다 ‘지자체’가 중심이 돼 학생을 돌보는 ‘온 동네 초등돌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 초 늘봄학교 강사를 파견하던 보수 성향 교육 단체 리박스쿨이 ‘대선 댓글 조작’ 의혹에 휩싸이면서 늘봄학교도 정치 공방에 휘말렸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뒤집기로 올해 늘봄학교를 이용한 초2 학생 27만여 명은 내년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초2 자녀를 둔 최진경(38)씨는 “3학년도 아직 어려서 돌봄이 필요할 나이인데 학교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결국 다시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가 초3에게 주겠다는 지원금은 해결책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늘봄학교는 저녁 8시까지 맡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놀이, 체험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무료였다. 그런데 방과후 프로그램은 유료다. 일주일에 1~2회 1시간 30분가량 진행되는데 3개월 수업료가 10만원 안팎이다. 정부 지원금 50만원으로는 1년에 수업 1개 정도밖에 못 듣는다.
교육계에선 지원금 외에 별도의 대책이 없어 학원 등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저소득층 학생 등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발달이 느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온라인 카페에는 “다양한 놀이·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가 좋아했는데, 내년부터 이용할 수 없다니 너무 막막하다” “정책을 수시로 바꾸면서 설명도 없으니 혼란스럽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늘봄학교는 지난 정부 교육 정책 가운데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한 사업으로 꼽힌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작년 5월 학부모 1051명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82.1%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늘봄학교 도입 이전까지 학교들이 운영한 ‘돌봄 교실’은 맞벌이 부부만 지원할 수 있는 등 조건이 까다롭고 수용 인원이 적어 학교마다 돌봄 대기자가 수백 명에 달했는데, 지난 정부가 늘봄학교를 도입한 후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늘봄학교 정책 연구를 수행한 허수연 서경대 교수는 “교육 정책의 핵심은 지속성인데 늘봄학교를 도입한 지 3년 만에 또 정책 방향을 바꾸면 학부모·학생만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돌봄 주체를 학교에서 지자체로 바꿨을 때 생길 수 있는 안전 문제나 수용 여건, 교육의 질 차이 등에 대한 사전 조사도 부족한 상태라서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늘봄학교
윤석열 정부가 저출생 원인 중 하나인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맞벌이 부모 등을 위해 학교에서 오전 7시부터 최장 오후 8시까지 돌봐주고, 하루 2시간씩 맞춤 수업도 제공한다. 올해 초 1·2학년 55만명이 이용했다. 내년부터 초등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정부는 확대 계획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