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그랜드볼룸에서 2026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가 열렸다. '미래 AI 인재를 말하다'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박희준 연세대 교수, 유홍림 서울대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포스텍 김성근 총장,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이사,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이사. 2025.12.17. / 고운호 기자

“대학이 지식을 꼭 가르쳐야 합니까? 학생이 그걸 왜 배워야 하나요? 누구보다 지식이 많은 챗GPT와 제미나이라는 친구가 손에 있는데.”

17일 조선일보 주최로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6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 대학 총장들과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 대표들이 ‘미래 AI 인재를 말하다’를 주제로 진행하던 좌담회에서, 국내 대표 AI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업스테이지’ 김성훈 대표가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이에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기업에 있는 많은 분이 AI 시대 ‘대학 무용론’을 얘기한다”며 “그러나 과거 대학이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혁명을 이끌었던 것처럼 지금 ‘기술 빅뱅 시대’에서도 역할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대학이 제 역할을 하려면 교육 패러다임을 뒤바꿔야 한다”며 “대학들은 관료제 체제에서 만들어진 규정집을 집어던지고 유연한 대학으로 체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동시에 교수도 이제 ‘무대에 선 지식의 전달자’에서 ‘학생 옆 조력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대학의 지식 전달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데 공감한다”며 “카이스트는 현재 교수 200여 명이 시험 시간에 학생에게 직접 시험 문제를 내고 풀어보라는 실험을 하고 있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은 “없는 걸 만들어 내는 사람이 ‘뽑고 싶은 AI 시대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훈 대표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던 학생이 아니라, 앱 만드는 데 몰두했거나 동아리 활동에 미쳤던 ‘엉뚱한 친구들’이 결국 성과를 내더라”고 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인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는 “업계가 원하는 인재는 문제 푸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AI 시대의 산학 협력’을 두고도 토론이 오갔다. 이광형 총장은 “대학은 기업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회의 가치를 창출하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지식 전수만 하는 대학은 학생들이 외면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성훈 대표는 대학 3학년 때 1년을 통째로 기업에서 일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3~4개월짜리 인턴십은 박봉을 받으며 손님 취급받는 학생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며 “기업과 대학, 정부가 힘을 모아 1년 동안 정규직 월급을 받으며 진짜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고 했다.

과학 기술 인재 유출도 핵심 주제였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한국과 해외의 보수 격차만이 인재 유출의 원인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해외로 나가는 제자들과 얘기해보면 한국을 떠나는 이유로 ‘상명하복 문화’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조직 문화’를 꼽는다”며 “말단 직원은 공을 세워도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떠났다는 것”이라고 했다. 백준호 대표는 “산업계가 당장 실현 가능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과제에 초점을 맞추며 직원들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이 17일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는 모습./고운호 기자

기조 강연은 김성근 총장이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지능’을 주제로 진행했다. 김 총장은 “인간의 지능이 AI에 비해 쓸모없는 게 아니다”라며 “꿈을 꾸고 실수를 하고 영감을 떠올리는 등 AI가 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사고’를 인간은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미래 인재는 이처럼 독특한 사고를 하는, AI가 대체 불가한 사람”이라며 “그러나 우리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고 이를 명령에 따라 끄집어내는 ‘순응주의자’를 양성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학교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K교육 AI’를 구축해 배포하고, AI 관련 수업 시간을 확대하겠다”며 “AI를 주도적이고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을 통해 ‘AI 3강’ 국가로 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역시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도록 그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교육 철학을 수립하겠다”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예술 감수성을 균형 있게 갖출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세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