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송원여상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올해 신입생을 120명 모집했는데, 153명(지원율 127%)이나 몰렸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지원자가 적어 신입생을 다 못 채웠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지원자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작년엔 126명 모집에 128명이 지원해 지원율 100%를 넘어서더니 올해는 10여 년 사이 가장 많은 학생이 몰린 것이다.
학교 측은 내년에 철도전기과를 신설하는 등 지역 산업계와 학생 수요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편한 것이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호 교감은 “대부분 학생이 일반고에 지원할 성적이 충분한 데도 전문성을 기르려 직업계고를 선택한 경우로, 자격증 취득과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직업계고에 떨어지면 일반고에 진학하는 시대가 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시대에 ‘블루칼라 직종’이 유망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가운데, 국내 직업계고에 지원하는 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무작정 대학에 가기보다 일찍부터 전문 분야 기술을 배우겠다는 청소년이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광주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2026학년도 광주광역시 직업계고 신입생 원서 접수 결과 정원 1794명에 2375명이 지원해 지원율 13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계고는 한동안 인기가 떨어져 신입생 정원을 못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광주 역시 2022학년도 직업계고 지원율이 83%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4학년도 지원율 104%를 기록해 정원보다 지원자가 더 많아지더니 2025학년도에는 127%까지 올랐다.
전북 역시 2026학년도 직업계고 신입생 모집 결과 2700명 정원에 3726명이 지원해 지원율이 138%에 달했다. 경북은 5101명 정원에 6144명이, 충남도 3483명을 뽑는데 3818명이 지원했다. 대전은 1674명 정원에 1747명이 지원해 지원율(104.4%)이 5년 만에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서울 역시 2026학년도 직업계고 지원율이 작년에 비해 크게 올랐다고 한다.
대학보다 취업을 선호하는 현상은 연구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진로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23년만 해도 고등학생의 77.3%가 졸업 후 진로 계획으로 ‘대학 진학’을 꼽았다. 그러나 2024년에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66.5%로 떨어졌고, 올해도 64.9%로 낮아지며 감소 추세다. 반면 졸업 후 취업을 희망한다는 고등학생은 2023년 7%에서 2024년 13.3%, 올해 15.6%로 증가하고 있다.
작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3.6%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 진학률이 젊은 세대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인력 시장의 불일치를 일으켜 취업난을 심화한다는 우려가 계속됐다. 최근엔 대학 4학년생과 졸업생 10명 중 6명이 ‘사실상 구직을 포기한 상태’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광주교육청 관계자는 “AI 시대에도 없어지지 않을 블루칼라 직업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교 때부터 전문성을 길러 일을 빨리 시작하겠다는 고교생이 늘어나고 있다”며 “지역 산업계로 진출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직업계고 활성화가 지역 살리기와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