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A중학교는 지난 3월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혁신학교 운영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는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전체 766명 중 159명이 참여했고, 그중 95명이 동의했다. 학부모의 12%만 찬성한 셈인데도 이 학교는 혁신학교가 됐다.

9일 채수지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혁신학교 지정(재지정 포함) 학부모 동의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4~2026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166곳 중 79곳이 전체 학부모 대비 동의율이 50% 이하였다.

그래픽=이진영

혁신학교는 2000년대 초 진보 교육감들이 도입한 학교 모델로, 주입식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토론과 체험 위주 교육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원하는 학교들이 일정 요건을 갖춰 신청하면 교육청이 지정해준다. 학력이 떨어진다며 학부모들이 반대해 지정이 무산된 곳도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2011년 29곳뿐이었던 혁신학교는 올해 253곳으로 9배 가까이 급증했다.

혁신학교 증가에는 학부모 동의율 기준이 완화된 것도 영향을 줬다. 과거 서울교육청은 전체 학부모의 50% 이상이 설문에 참여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설문 참여 학부모 중 과반이 동의해야 혁신학교를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 모집부터 최소 인원 권고 없이, 설문 참여 학부모 중 과반 동의만 안내했다. 코로나 때 학부모 참여율이 낮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설문 참여 인원의 최소 기준도 없는 건 문제로 꼽힌다.

학부모 설문을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학교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B여고는 맞벌이 부모는 참석하기 어려운 평일 오후 4시에 설명회를 했고, 설문 조사는 이틀만 진행했다. 결국 전체 학부모 627명 중 95명이 설문에 참여, 92명 동의로 2026년 혁신학교에 재지정됐다. 이에 “15% 의견이 전체 학부모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학교들이 혁신학교 신청에 적극 나서는 건 예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일반 운영비 외에 매년 4600만원(재지정 3800만원)씩 추가로 받는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쓰라는 취지인데, 구체적인 예산 사용 내역을 보고할 필요도 없다. 채수지 시의원은 “혁신학교는 연간 100억원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데 성과는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