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의 이공계 연구소에 총 3800억원(각 950억원)을 지원하는 ‘국가연구소 사업(NRL 2.0)’에 고려대·연세대·포스텍·이화여대 등이 최종 선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정부가 지난 9월 대학 네 곳을 선정해 놓고도 발표하지 않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학들에는 홍보를 하지 말라는 ‘함구령’도 내렸다고 합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소 지원 사업이라 정부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데, 왜 꽁꽁 숨긴 걸까요?
이 사업은 작년 11월 지난 정부 대통령실이 ‘과학기술 분야 5대 개혁 방향’을 발표하며 추진했습니다. 학과 간 벽을 허문 대형 융복합 연구를 지원해 세계 최고 수준 대학 부설 연구소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죠. 그런데 정부는 사업 계획 발표 후 지난 6월 예비 지정 결과와 9월 최종 선정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혁신하는 지역 대학에 1000억원씩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사업은 평가 단계마다 결과를 발표했던 것과 대비됩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은 보통 대규모 국가 사업에 선정되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이번에는 정부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홍보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이번 사업 결과를 숨긴 것은 이재명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과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입해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 국가연구소 사업엔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등 국립대는 모두 떨어지고 수도권 대학이 다수 선정돼, 지역 차별이라는 반발이 컸다고 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새 정부 정책 취지와 안 맞는 부분이 있고 지역 여론을 고려해 홍보를 자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여론을 받아들여 내년엔 수도권과 지역 대학을 2곳씩 선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교육계에선 세금으로 수천억 원짜리 사업을 진행하며 국민에게 투명하게 발표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부처들이 대통령실과 지역 대학 눈치를 과도하게 보면서 불통 행정을 한 것”이라며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 사업인데 선정 대학과 그 내용조차 국민이 알지 못하게 숨기는 것이 맞느냐”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