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가 서문 인근 소나무숲에 반도체공동연구소 신축을 추진하자 일부 교수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7일 오후 해당 부지 앞에 내걸린 현수막. /신현종 기자

지역 국립대를 반도체 인재 양성 거점으로 키우기 위해 약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반도체 공동 연구소’ 설립 사업이 발표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첫 삽도 못 뜬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대들이 무리한 사업 계획을 세워 예산을 따내고는 일정을 못 지켜 시급한 반도체 인력 배출도 그만큼 늦어지게 됐다.

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23년 반도체 공동 연구소 사업에 1차로 선정된 전남대·부산대·경북대·충남대와 이듬해 2차로 선정된 전북대·강원대 등 6곳 중 이날까지 연구소 공사에 착수한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1차 선정 대학은 2024년 공사를 시작해 올해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설계 작업조차 못 끝냈고, 전북대·강원대 역시 착공 시기를 올해에서 내년으로 연기했다.

◇‘소나무 숲 보존’에 막힌 충남대 반도체연구소… 학생들, 떠돌이 수업

반도체 공동 연구소 사업은 2031년까지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양성하는 지난 정부 국정 과제의 일환으로 교육부가 2022년 7월 발표했다. 국가 핵심 산업인 반도체 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으로 경제성장 동력 자체가 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교육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력을 조속히 배출하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의 첨단 학과 정원을 늘리는 동시에 지역 국립대에는 반도체 공동 연구소를 지어 해당 권역의 반도체 인재 양성과 산학 협력의 중추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대는 연구소에서 지역 산업계 수요가 많은 차량용 반도체를 특화한 연구를 하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었다. 인근 대학 연구원과 학생, 기업, 기관이 함께 이용하는 ‘지역 반도체 허브’를 만들어 하루빨리 반도체 인력을 배출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픽=양진경

교육부는 공모를 거쳐 여섯 대학을 선정했고, 연구소 설립 비용을 164억원씩 배정했다. 향후 장비 구입비와 운영비를 수백억원씩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대학들은 지자체 예산도 받기로 했다. 충남대는 대전시에서 164억원, 전남대는 광주시에서 72억원 등을 확보했다.

그런데 대학들은 연구소 특성화 방향이나 예산 규모, 부지 등을 두고 내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 이유를 들면서 일정을 줄줄이 연기했다. 예컨대 부산대는 사업 선정 이후 연구소 부지를 바꾸기로 하면서 필요한 정부 행정 절차가 지연되는 등 이유로 착공 일정이 연기됐다. 충남대도 특성화 방향, 부지 선정 등을 놓고 구성원 이견을 겪었다. 현재는 인문대 옆 소나무 숲에 연구소를 짓기로 결정했는데, 숲을 보존해야 한다는 일부 교수가 여전히 반대하는 상황이다.

애초 대학들이 사업을 따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는 지적도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처음에는 반도체 전공 교수들이 모여 ‘국정 과제’ 목표에 맞춰 계획을 빠듯하게 세웠지만, 나중에 보니 계획대로 하기엔 문제가 많았다”면서 “국립대 특성상 행정 절차와 구성원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필요해서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산 규모가 큰 사업인 만큼 신중히 하다 보니 설립이 늦어졌다”면서 “설계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어 일정이 더 연기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 설립이 연기되자 다른 정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도 생겼다. 예컨대, 충남대는 사업 선정 후 2024년 반도체융합학과를 신설해 신입생 60명을 선발했다. 이 학과 학생들은 올해 완공될 연구소를 내년부터 쓸 예정이었지만, 아직 건물 착공도 안 돼 학과 휴게실이나 전용 강의실도 없는 떠돌이 신세다. 분개한 학생들이 지난달 대학 본부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반도체 공동 연구소 사업 등을 달성하려 학과를 급조한 것 아니냐. 무책임하고 위선적이다”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여 항의하기도 했다.

교육계에선 반도체 공동 연구소 지연 사태는 사립대에 비해 사업 진행이 느리고 개혁이 더딘 국립대 특유의 문제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반도체 인재 양성은 국가적으로 매우 시급한 사업인데, 세금을 지원받는 국립대가 계획을 부풀려 사업을 따내고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은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에 국립대 지원 예산으로 올해(4243억원)의 두 배가 넘는 8735억원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선거 공약이자 국정 과제인 ‘서울대 10곳 만들기’를 위해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에 투입하는 예산이 718억원씩 총 6462억원이다. 이 사업은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으로, 앞으로 예산 수조 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하지만 구체적 사업 계획이 없어 반도체 연구소 사업처럼 지지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배영찬 한양대 명예교수는 “2031년까지 15만명 양성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있는 반도체 양성도 이렇게 지지부진한데 ‘서울대를 10곳 만든다’는 추상적 목표만 세우고 예산을 쓰면 의미 없는 돈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정부는 국립대의 사업 달성 가능성, 종전 사업 성과를 면밀히 살펴 예산 투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